절박한 위기감속에 비치는 긴장감도 실적악화를 털고 내년에는 두고 보자 하는 비장감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올해 인사는 한 해 실적을 놓고 행한 신상필벌 인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눈에 띄게 ‘젊은 피’를 발탁하는 세대교체가 두드러진 것도 아닌 어정쩡한 인사라는 뒷말을 남겼다.
적어도 재계 1위 그룹인 삼성 인사는 우리 산업계의 1년을 결산하고 곧 다가올 새해 지표를 가늠해 볼 수 있기도 해 궁금증을 자아내곤 했다.
그래서 재계 안팎에서는 언제부턴가 장관이 누구로 바뀌냐 하는 것보다 삼성 사장단 인사가 더 흥미롭다고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 삼성인사가 올해는 뚜껑을 열자 이재용 부회장의 변화에 무게를 둔 ‘실용주의 인사’는 커녕 별로 움직임 없는 안정에 그쳤다.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분쟁, 메르스 사태 등 어느 때보다 지독한 나날들을 보냈던 삼성으로서는 당연히 경영진을 확 바꾸는 ‘문책성 인사’를 부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가전과 스마트폰 책임 수장인 윤부근, 신종균 두 사장이 일선에서 살짝 비껴난 것 외에 ‘뉴스’는 없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삼성 인사는 ‘기득권’, ‘세습경영’ ‘현상유지’ 등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며 ”불황속에 급변하는 환경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이 우리 산업경제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기업가 정신은 물론 책임마저 방기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직변화의 최소화는 LG나 다른 그룹들도 별 차이가 없었다.
어떤 경영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경쟁력’과 미래 먹거리를 포착할 수 있는 '성장경쟁력'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의지가 이번 인사에 고스란히 나타났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올해보다 내년 경기도 벌써 빨간 불이 예고돼 더욱 엄혹할 것임을 감지케 하고 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그룹들이 과연 어디로 가야 할지 변화에 대한 방향성을 찾지 못한 결과가 이번 소극적 인사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어려운 시기에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는데 수성에 급급했을 뿐”이라며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인사 행태를 그는 꼬집었다.
올해 인사에서는 또 여성들의 과감한 인재발탁이 코오롱그룹 등에서 가뭄에 콩 나듯 있었을 뿐 여성홀대도 여전했다.
현대기아차 인사도 앞두고 있지만 간간히 수시 인사를 해 크게 변화 모습을 보일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다만 형제의 난으로 연말까지도 시끄럽게 상황을 몰고 가는 롯데그룹과 사면 후 줄곧 광폭행보를 이어가는 최태원 회장의 SK 그룹 인사가 그나마 ‘안정’을 넘어서지 않을까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