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선진국? 개도국?…기후협상 각축장서 줄타기

신기후체제 둘러싸고 나라마다 동상이몽…합의도출까지 험난한 여정

박근혜 대통령이 30일 오후(현지시간) 파리 르부르제 공항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각국 정상들과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우리는 기후변화를 감지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파리 기후변화협약 총회에 참석한 모든 나라들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을 피하기 위해 전지구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데 목소리를 같이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 1위와 2위인 중국과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 150개국 정상들이 프랑스 파리로 날아들어, 사상 최대 규모의 정상회의가 열린 것도 기후 대응의 중요성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전세계 170개국이 제출한 자발적 감축목표(INDC)가 모두 지켜진다고 하더라도 지구온도는 2100년까지 2.7도씨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의 재앙을 피하기 위한 '지구온도 상승 2도씨 이하' 목표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온실가스 감축의 중요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재정지원이 필수적이라는 대의에는 전세계가 공감하고 있지만, 앞으로 추가적인 감축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과연 누가 얼마만큼의 책임을 질 것인지 각론을 놓고서는 나라마다 입장 차이가 뚜렷하다.

각국 정상들은 특정한 논의나 합의 없이 그저 몇분간의 연설을 차례대로 하는 것으로 정치적인 동력만 제공한 채, 정상회의를 마쳤다. 그리고 실제 신기후체제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협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세계 각국은 각자 처한 상황에 최대한 유리하게 합의문을 이끌어내기 위해 치열한 수싸움을 시작한 상태다.

◇ 선진국, "모두에게 감축의무…법적 구속력 부여하자"


먼저 선진국들은 앞으로 다가올 신기후체제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선진국과 개도국이 구분없이 모두가 감축의무를 져야 한다고 본다. 서방 선진국들에 국한된 이른바 부속서 1(Annex I) 국가들뿐 아니라 감축의무는 포괄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각 국가들이 제출한 감축목표는 법적 구속력에 부여돼야 하고, 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5년마다 점검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기후 정상회의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는 "현재 제출된 감축목표(INDC)로는 '2도씨 이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불충분하다"며, 보다 진전된 감축목표를 제시하기 위해 5년 단위의 평가 메커니즘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캐머런 총리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이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해볼 만한 것(do-able)'이라고 각 국가들의 동의를 호소했다.

기후변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재정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선진국 뿐 아니라 지원 여력이 있는 모든 국가(all countries in a position to do so), 그리고 민간 재원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역사적으로 지구온난화 책임의 상당부분이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추가적인 감축노력이나 지구온난화로 피해를 보는 나라에 대한 재정지원도 선진국 위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 개도국 "선진국 책임이 더 크다"

특히 개도국이면서도 경제성장 속도가 빨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중국이나 인도, 남아공 등이 강경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개도국은 경제성장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힘들고, 그래서 선진국이 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을 통해 성장한 선진국들이 이제와서 개도국들에게까지 강제적인 감축의무를 부과해 성장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는 불만이다.

인도의 모디 총리는 "12억5천만 인구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인도는 빠르게 성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단순히 역사적인 책임 문제뿐만 아니라 선진국이야말로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선진국의 역할론을 역설했다.

남아공의 줌마 대통령도 "역사적 책임을 감안할 때 선진국들이 약속한 1000억 달러의 재원 그 이상을 쌓아둬야 한다"고 같은 입장을 밝혔다.

기후변화협약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각국 대표단 (사진 = UNFCCC)
그런가하면 기후변화로 이미 위험에 처해있는 몰디브나 키리바티와 같은 작은 섬나라 국가들, 그리고 심각한 가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극빈 국가들은 또다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선진국의 재정지원을 강조하는 측면에서는 개도국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지만, 전세계가 보다 진전된 감축의무를 져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선진국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 국가들은 지구온도 상승 한도를 '2도씨 이하'가 아닌 '1.5도씨 이하'로 상향조정 해야한다고 절박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크리스천 미크로네시아 연방 대통령은 "유엔이 전지구적 비상사태를 선포해 전세계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역설했고, 로레악 마셜제도 공화국 대통령은 "내가 아는 모든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바로 여기 모인 당신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절박함을 호소했다.

◇ 선진국-개도국, 그 중간에 놓인 한국

이처럼 신기후체제를 놓고 세계 각국의 입장이 부딪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입장 또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선진국과 개도국을 나눠 의무를 차별화하자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선진국 쪽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더 많은 감축의무와 재정지원 의무를 지게 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엄격히 분리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조정해야지, 강한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데는 반대 입장이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중간 입장에서 중재자로서 협상에 임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략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후 정상회의에서 에너지 신산업 육성 등 다소 쟁점을 비껴가는 쪽으로 연설의 방향을 잡은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후세에 물려줄 수 없다는 커다란 대의 아래, 각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을 철저히 반영하기 위해 치열하게 협상에 임하고 있다.

정상회의 직후 본격 협상에 들어간 196개 당사국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12일 남짓. 그동안 신기후체제를 둘러싼 동상이몽을 극복하고 합의 도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 험난한 여정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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