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에세이집 '오늘의 남자'(지은이 김형경·펴낸곳 창비)는 이 물음에 대한 흥미로운 답을 제공한다.
심리 에세이스트인 지은이는 "이 글들을 쓰기 시작할 때의 의도는 한없이 벌어져가는 남녀 사이 간극을 메울 수 있었으면 하는 거였다"고 전한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면서 더 큰 사회적 부조리와 직면하게 된 듯한 분위기다.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가장 나쁜 사람이 가장 아픈 사람이라고. 폭력적이고 괴팍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가 성장기에 중요한 양육자로부터 그와 같은 것을 받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성장기 아이에게 단 한명의 어른이라도 따뜻한 눈길을 주고,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고, 잠재력을 믿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마음의 문제를 인식하고 보살피기 시작한 지 십년이 조금 넘었다. 이즈음에는 남자들도 내면에 마음이라는 것이 있으며 그것이 가장 힘이 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아픈 남자가 나쁜 남자가 되지 않도록 개인의 인식과 사회 시스템이 함께 변화해야 할 것이다.' (59쪽)
'아픈 남자, 슬픈 남자' '가장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남자의 성과 사랑' '남자 속의 영웅들' '남자의 성정과 나이 듦'이라는 각 장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자연스레 몸으로 익히게 된 남녀에 대한 판타지를 줄기차게 꼬집고 있다.
다음의 인용문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자들은 여자의 간접 어법이나 완곡한 돌려 말하기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핵심만 정확하게 건네는 남자의 말하기 방식과 머뭇거리며 돌아가는 여자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자의 언어를 오해한다. 저녁식사를 못하겠다는 말의 내용보다 그녀가 건네는 상냥한 말투를 먼저 인지한다. 또다른 이유도 있다. 남자들이 대체로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밥을 사주겠다고 하는데 감히 거절할 여자는 없다고 믿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고, 엄마의 왕자로 자라나고, 남성 중심인 사회의 주인공으로 살면서 나르시시스트가 되지 않기는 오히려 어려울 것이다.' (148쪽)
이 책은 '평생 남자인 척하면서 사는 게 힘들었던 남자'와 '평생 남자를 아는 척하면서 살기 힘들었던 여자'들에게 훌륭한 남녀관계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는 결국 직장, 학교, 가정 안에서 겪게 되는 관계의 갈등은 물론 길거리, 음식점 등 주변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의 근원을 환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낸다.
강요된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감을 되찾고, 이를 통해 보다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동력이 이 책에 오롯이 스며 있는 셈이다.
끝으로, 맨앞에서 인용했던 책 속 글의 나머지 내용을 소개하면서 매듭을 짓는다. '대물림'이라는 중요한 함의를 지닌 그 내용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한 선결 과제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런 이들이 부부가 되어 자녀에게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물려주었다. 내가 안타까웠던 이들은 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고통부터 떠안는 청소년과 청년들이었다. 그들을 도우려면 우선 부모 세대가 변해야 한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