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5년서 최대 12년간 쪼개고 달라진 규제는 '운행일지'뿐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업무용 차량의 구입·유지비 등 총비용의 50%까지 일괄 경비처리하는 세법개정안를 내놨다. 고가 업무용 차량의 세금 탈루를 막기 위해서다. 나머지 50%는 운행일지를 확인해 업무용으로 사용한 비율만큼만 공제해준다. 이는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업무용 차량에 한해 적용된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수억 원대 고급차를 회사차로 등록해놓고 사적으로 이용하는 폐단을 시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비싼 차일수록 세제혜택이 커져 조세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기재부는 지난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 수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곧바로 퇴짜를 맞았다. 수정안 내용이 사안의 본질을 벗어났고 너무 복잡하다는 게 조세위원 다수의 지적이었다. 과도한 세제혜택을 방지할 수 있는 차량 구입비와 유지비에 대한 비용한도 설정도 없었다.
정부의 수정안은 업무용 차량 사업자들이 운행일지를 쓰지 않더라도 차량 구입 및 유지비용에 대해 연간 10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 경비에 산입하지 못한 잔액을 매년 이월시켜 최대 12년째 되는 해까지 전액 경비로 인정해 준다. 단 운행일지 작성을 통해 업무 사용 비율만큼만 경비처리가 가능하다.
현행 세법상 업무용차 구입비는 매년 총 취득가액의 20%씩 총 5년 동안 경비산입을 허용하고 있다. 2억원짜리 차량을 예로 들면 매년 4000만원씩 5년 만에 전액 경비처리를 할 수 있다. 즉 차량 구입 5년 뒤 2억원 전액 경비처리가 되고 세감면으로 매년 1672만원씩 5년간 83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수정안은 매년 1000만원씩 경비산입이 허용된다. 따라서 20년째 되는 해에 구입비 2억원 전액 경비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총 세감면액은 현행과 같은 8360만원이다.
다만 대부분 사업자들이 회사차를 5년 이상 운행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5년째 중고차로 매각할 경우 중고차 매각 금액을 제외하고도 경비로 산입하지 못한 구입비가 남아있으면 이후에도 매년 1000만원씩 경비 산입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최초 구입 후 12년째에는 남은 구입비 전액 경비처리가 가능하다.
결국 정부 수정안은 기존 5년 동안 받았던 세제혜택을 최대 12년에 걸쳐 받는 것에 불과한 셈이다. 사실상 운행일지 작성과 경비 처리 기간이 5년에서 12년으로 늘어난 것 외에는 현행법과도 사실상 다를 바 없다. 이를 통한 과세 효과 역시 미지수다.
◇ 조세형평성·세금탈루문제 해결하려면 '비용한도' 설정해야
국회 안팎에서는 정부의 수정안이 본질을 외면했을 뿐더러 고가 업무용차를 악용한 세금탈루와 조세형평성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무늬만 회사차' 논란의 핵심은 일반 상식상 업무용차로 간주하기 어려운 사치성 차량에 대해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업계에서 "수억원이 넘는 고가의 승용차가 필요한 업무가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회사 업무용차로 적합하고 일반 서민 납세자들도 납득할 수 있는 통상적인 가격 수준이 얼마인지가 중요하고, 이 수준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정부가 경비인정 한도 설정에 나서야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고급차로 인식되는 기준은 대체로 3000~4000만원대부터다. 지난 7~11월 발의된 5개의 업무용차 관련 국회의원 입법안들은 별도 예외 규정없이 업무용차 구입비 한도를 이 수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8월 정부가 1차로 개정안을 제출한 이후 국회에선 업무용 차량의 비용인정 상한선을 설정하는 의원 입법이 여러 차례 발의됐다.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김동철·윤호중 의원은 구입비에 대해 3000만원까지, 새누리당 함진규 의원은 4000만원까지,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의원은 구입비와 유지비를 합쳐 5000만원까지만 경비처리를 인정하는 소득법인 세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비용한도 설정이 통상마찰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정부의 우려에 대해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모든 차량에 적용될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정당한 조세정책"이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통상전문가인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최근 WTO판례 등을 종합하면 고가의 국산차가 많이 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3000만원 상한선 설정이 국산차를 보호하기 위한 '사실상의 차별조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