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종상에게 만회할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록 배우들의 대거 불참으로 그 모양새가 좋지 않았더라도, 수상 결과를 두고 '잡음'이 없었더라면 조용히 내년을 기약할 수 있었다.
문제는 운영 과정은 물론이고, 그 결과에도 잡음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영화 '암살'과 '베테랑' 등이 수상에서 배제된 것과 다름 없는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시장'이 10관왕을 싹쓸이할 동안, '암살'은 전지현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체면을 차렸고 '베테랑'은 무려 '무관'이었다.
실제로 기자는 대종상 시상식 당일인 20일, 대종상 측 김진문 고문으로부터 "어디에서 '국제시장'이 상을 휩쓴다는 이야기가 새어나갔는지 모르겠는데 이 때문에 배우들이 그들끼리 자존심 문제로 불참을 이야기한 듯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후자는 모르겠지만 전자는 현실이 된 것이다.
충무로 영화인 A 씨는 이 같은 수상 결과를 당연한 결과라고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작품을 심사하는 17명의 심사위원들 대다수의 나이가 지나치게 고령인 탓에, '베테랑'이 주는 정서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암살'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세 영화를 통틀어 놓고 보면, 직접 그들이 겪은 삶을 그린 '국제시장'이 선호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A 씨는 "나름대로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개최 당일에 수상자 명단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공정성을 훼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 어느 정도 수상 균형을 맞춰야 되는데 그걸 심사위원들끼리 논의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니까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5관왕을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종상에는 지금 전 세대를 아우르는 힘이 필요하다. 젊은 피들의 수혈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영화학과 전공 대학생도 넣고, 젊은 영화인들을 심사위원에 포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종상의 17명 심사위원 중 8명은 주최 측인 사단법인 영화인총연합회에 속한 8개 단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나머지 9명은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다. A 씨는 심사위원 선정 방식을 3배수 추첨으로 바꿔 어느 정도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맥에 따른 지정이나 다름없어 지난해에는 영화와 전혀 무관한 기업가가 심사위원 자리에 앉기도 했다.
8개 단체 중 하나인 한국영화감독협회(이하 감독협회) 이상우 사무총장은 '국제시장' 10관왕이 심사위원단의 고유 권한과 결정임을 인정하면서도 "심사위원 명단을 발표하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 의아하다. 여기에 자부심을 느낄 분들이지, 불명예라고 생각할 분은 없다. 어쨌든 그 부분은 심사위원들이 책임지고 감당해야 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대중적인 사회 분위기가 '몰아주기' 시상이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암살'과 '베테랑') 영화 특성상, 굳이 진영 논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몰아주기'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는 부분은 (대종상 측이) 이해를 해야 한다고 본다. '국제시장'과 경쟁 가능한 영화들이 있었음에도 많은 부문에서 수상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다"고 털어놓았다.
영화인 A 씨는 대종상을 본래 친우파적인 성향을 가진 시상식으로 꼽았다. 영화인총연합회에 속한 단체들이 대체로 그렇기 때문이다.
진보 성향을 가진 부산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주요 관계자들이나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이 대종상 집행위원회 명단에 없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한 쪽에만 치우친 반쪽 짜리 영화제가 된 셈이다.
그는 "위에 있는 세대가 아래 세대들을 품어야 그들도 못 이기는 척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 포용력과 결단력이 있어야 하는데 대종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도 함께 이름을 올리면 지금보다 균형있고 공정한 영화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같은 영화인총연합회지만 그 중에서도 감독협회와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대종상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단체다.
무엇보다 감독협회 입장에서는 최하원 집행위원장의 존재가 달가울 수 없는 상황이다.
A 씨는 "영화인총연합회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8개 협회 중 한 곳의 회원이어야 한다. 그런데 최하원 감독은 감독협회에서 제명됐기 때문에 명확히 따지면 집행위원장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런 그가 집행위원장으로 있으니 당연히 내부적으로도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격려 내용이 담긴 단체 문자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에 대해서도 "누군가 그 문자를 유출했다는 건데, 그렇게 내부가 분열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종상 조직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26일 열리는 청룡영화제가 끝나면 대종상도 조직 정리 및 변화에 들어갈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감독협회 이 사무총장은 조직 구성원 중 언론을 응대한 조근우 본부장을 문제적 인물로 꼽았다. 주요 배우들의 대거 불참 소식이 알려지면서 조 본부장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억울한 입장을 피력해 왔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를 모르고 있다'는 또 다른 비난 여론을 조성했다.
이 사무총장은 "조근우 본부장이 총괄운영본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언론 쪽에 앞장서서 이야기를 했는데 언제부터 그 분이 영화인이었는지 저는 모르겠다. 정통성을 가진 영화인이 아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그런 발언들을 쏟아냈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 일주일 전 참석 요청한 대종상…"자업자득 갑질"
이전까지 조짐은 있었지만 직접적인 파행의 불씨는 대종상 측의 늑장 참석 요청이었다. 미처 스케줄 조정을 할 여유가 사라지자 수상 유력 배우들은 참석이 불가능해졌다.
영화인 A 씨는 "정말 스케줄이 이유인 배우는 5명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다수 배우들이 평균적으로 일주일 전쯤 참석 요청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한 달 전에 알려주고 '이날 수상할 수도 있으니 스케줄 조정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대종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1회부터 51회까지 수상자들에게도 어렵게 섭외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작 올해 현장에는 한 분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함께 이름을 올린 남우·여우주연상 후보들도 대거 불참을 알렸다. 이렇게 대종상은 주인공 없는 시상식을 치르게 됐다.
감독협회 이 사무총장은 "여론 조성에 있어서 시상식에 나가는 것 자체가 배우들에게 불안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한두 명 나오지 않은 것이 기폭제가 됐을 것이라고 본다. '참가상' '대리수상 불가' 등의 발언이 영화인총연합회의 갑질로 비춰졌고, 거기에 대한 자업자득이 아닐까 싶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감독협회에서 진행하는 시상식을 생각해 보면 배우들의 참석 여부는 굉장히 민감하고 긴밀한 사인이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거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배우들이 대거 불참한 사태를 '자존심 싸움'으로 보는 김 고문의 발언을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정작 잘못된 것은 그런 것이다. 핑곗거리를 대야 하는 상황이라 그런 발언을 하는데 그런 것들이 배우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거침없는 쓴소리가 이어졌지만 이들 역시 대종상에 애정을 가진 영화인이다. 영화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벼랑 끝에 몰린 대종상이 '남일' 같지 않다.
A 씨는 "대종상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이것을 정치적으로, 수익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문화 예술을 지키고 번영시키겠다는 관점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힘든 상황이다. 이런 전통있는 영화제가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이 영화인인 우리에게도 솔직히 손해다. 정말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무총장은 "잘못된 부분은 깔끔하게 사과하고 빨리 시정하면 된다. 물론 창피할 수도 있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이런 사태를 맞는 것보다 낫다. 여러 발언으로 몰매를 맞았는데 이 같은 파행이 생겨 참 아쉽다"면서 "저 역시도 그 장본인이 아닌가 하는 심정 때문에 처절하다. 대종상이 사태 심각성을 인지하고 처절하게 반성했는지, 저희 협회는 이번 일에 대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기자회견 개최 여부를 상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