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右형우'로 불렸던 최형우 전 의원 등이 빈소가 차려지자마자 서둘러 빈소를 찾았다.
특히, YS키즈로 현 정치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은 상주를 자처하며 빈소를 지키고 있다.
◇ 金 '밑바닥부터', 徐 '중도 합류'
김무성.서청원 두 사람의 공통점은 YS키즈로 정치권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정치행보는 그 결이 좀 다르다.
사업가이자 정치인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차남으로 든든한 배경을 둔 김 대표는 지난 1983년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 전 대통령을 스스로 찾아가 상도동계 막내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통일민주당 총무국장과 민자당 의원국장 등을 거쳐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 정책보좌역을 맡아 대선을 치렀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민정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을 역임하는 등 청와대와 정부에서 경력을 쌓은 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돼 현재 5선 국회의원이 됐다.
이처럼 김 대표는 처음부터 상도동계 막내로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왔다면 서 최고위원은 정계에 발을 들인지 얼마 안돼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뒤늦게 상도동계로 합류했다.
신문기자 출신인 서 최고위원은 1981년 민한당 후보로 11대 총선에서 당선됐고, 12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13대 총선에서 상도동계 인사들과의 친분으로 김 전 대통령이 이끄는 통일민주당 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이 때부터 상도동계로 활동한 서 최고위원은 총재 비서실장, 대변인 등으로 승승장구했고 김영삼정부에서는 정무장관까지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 MB정부에서 정치행보 엇갈린 金, 徐
이처럼 정치이력을 좀 달라도 대표적인 YS키즈이자 현 정치권에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총아인 두 사람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원하며 한배를 탔던 두 사람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모두 공천에서 탈락해 각각 친박 무소속, 친박연대 후보로 원내에 재진입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 다시 입당한 김 대표는 지난 2009년 자신의 거취 문제로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 끝에 결국 친박계와 멀어져 비박계로 돌아섰다.
이후 김 대표는 오히려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으며 친이계의 지원속에 원내대표를 역임하는 등 자신의 정치적 전성기를 열었다.
반면 서 최고위원은 이명박정부 이후 자신의 정치인생에서 최대 시련을 맞았다. 18대 총선 당시 선거법 위반 문제로 지난 2010년 5월 실형이 확정된 그는 1년 7월여 간의 수감생활 끝에 이듬해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서 최고위원이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 사이 갈등의 희생양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 비박, 친박 대표 주자로 사사건건 충돌
이명박 정부 당시 엇갈린 행보는 박근혜정부 들어서며 두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갈등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새누리당 당 대표 경선에서 맞붙은 두 사람은 각각 1, 2위로 대표와 최고위원이 됐고 이후 김 대표는 비박계 대표 주자로, 서 최고위원은 친박계 대표 주자로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특히, 19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공천룰 전쟁에서 두 사람은 각자 자신들의 진영을 대변하며 공개.비공개석상 가릴 것 없이 충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빈소에서 두 사람은 서로 상주를 자처하면서도 서로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제대로 말도 섞지 않은채 각각 조문객을 맞고 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이 사실상 유언처럼 남겼던 마지막 메시지는 '통합과 화합'이었다고, 아들 현철 씨는 전했다.
그는 이날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의 조문을 받으며 "2013년 입원하신 뒤에 말씀을 잘 하진 못하셨는데 붓글씨로 통합하고 화합을 딱 쓰시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