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벤처 생태계' 새판을 짜야 한다

<벤처20년 기획>① 왜 우리나라에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안 생기나

저성장 국면으로 가고 있는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벤처기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두 차례에 걸쳐 20년의 역사를 가진 벤처기업의 현주소를 점검해 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집중조명한다.

글 싣는 순서
1. 왜 우리나라에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안 생기나
2. 스타트업, 벤처기업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나

우리나라에서 벤처기업이 탄생한지 올해로 20주년을 맞는다.
(*벤처기업 역사 20주년은 벤처기업협회가 출범한 1995년을 기산점으로 본다.)

벤처기업이 지난 20년 동안 이룬 성과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춘우 서울시립대교수는 “벤처기업은 IMF 경제위기 극복의 구원투수와 같은 역할을 했고 이후 대기업과 함께 한국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쌍두마차 역할을 해왔다. 특히 그동안 디지털 신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성장산업 속에서 많은 벤처기업인들이 성공과 실패, 재도전을 하면서 사회경제적 활력소가 돼 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성공신화가 만들어졌고 자수성가형 신흥기업가 그룹이 줄지어 탄생했다”고 말했다.

◇ '벤처 20년' 1천억 벤처클럽 460개사, 1조 벤처클럽 6개사 탄생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말 기준으로 매출액 천억을 넘긴 벤처기업은 460개사에 이른다.
(*매출액 1천억 벤처기업 기준 : 1998년 벤처기업 확인제도 도입 이후 한번이라도 벤처기업으로 확인받은 바 있는 기업 가운데 한해 매출액이 천억을 넘긴 벤처기업)

매출액 1조원을 넘긴 벤처기업도 6개사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 1조원 돌파 벤처기업(6개사) : 네이버㈜, ㈜성우하이텍, STX중공업㈜, ㈜유라코퍼레이션, 코웨이㈜, ㈜휴맥스)

20년의 짧은 역사에 이 같은 성과는 상당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들 잘 나가는 벤처기업은 다른 글로벌 벤처기업은 물론이고 국내 재벌 대기업과 비교해서도 한참 뒤진다.

지난 20일 현재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20조 6천억원으로,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 12위다.

이는 1위인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189조 2천억원의 9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은 수준이다.

매출액으로 보면 격차는 아주 크게 벌어진다.

네이버의 지난해 연간매출액은 2조 7천억원으로 삼성전자(206조 2천억원)의 76분의 1 수준이다.

글로벌 벤처기업인 구글이나 페이스북과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

네이버보다 한해 전인 1998년에 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검색서비스를 하는 영세한 벤처기업에서 출발한 구글의 시가총액은 현재 4백조원대로 우리나라 1위인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두배가 넘고 미국주식시장에서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4년에 하버드대학교 기숙사에서 시작된 페이스북도 2백조원대로 삼성전자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이병헌 광운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20년간 벤처기업이 성공했다면 구글과 페이스북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가총액이나 매출액이 삼성전자의 2분의 1 정도 수준까지는 컸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시가총액이나 매출액을 다합쳐도 잘나가는 한 개 재벌기업 수준에도 못미친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커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재벌중심 백화점식 독과점 시장구조…신생기업 진출 힘들어"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한국의 시장이 다르다는 점이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장은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국내 시장이 바로 글로벌시장이다. 출발 때부터 덩치가 큰 시장이 열려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시장이 없기 때문에 작은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또 우리나라는 재벌중심의 독과점 형태 시장구조를 갖고 있다. 이 시장에서는 재벌 대기업이 우세한 자본으로 모든 업종을 망라해 백화점 식으로 영업한다. 신생기업이 들어갈 만한 틈새시장이 많지 않아 미국처럼 크기 힘든 구조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으로 가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큰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시장구조에서 네이버와 같은 벤처기업이 1998년에 시작해서 안 망하고 계속 살아남아서 매출 2조원을 돌파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김세종 원장은 덧붙였다.

시장의 구조 외에 벤처기업을 둘러싼 벤처생태계에도 문제가 많다.

◇ "벤처 생태계 제대로 마련 안돼…야생동물이 아닌 가축으로 만들어"

무엇보다 정부 주도로 과도한 지원이 이뤄져 건강한 벤처생태계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교수는 "엄밀하게 말해 우리나라에는 벤처생태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정부가 벤처에 지원을 많이 했다. 지원이 왜곡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원이 있기 때문에 벤처기업들이 쉬운 것만 먹고 만다. 열심히 뛸 유인을 없애버린다. 벤처란 것은 동물적인 근성을 가지고 커다란 돈을 노리고 들어가는 거다. 동물들이 야생에서 놀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정부가 안전한 놀이터 깔아주고 자꾸 먹을 것을 던져준다. 이것은 동물을 야생동물이 아닌 가축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병헌 광운대 경제학과 교수도 “벤처생태계 관점에서 보면 아직도 많이 왜곡돼 있다. 정부가 해야 될 부분과 민간이 해야 될 부분을 잘 구분해야 벤처생태계가 완성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정부가 민간이 해야 될 영역에 지원금을 넣어 민간시장을 와해시키고 있다. 정부가 민간자본과 경쟁해 민간자본이 못 들어온다. 정부지원으로 벤처기업창업이 양적으로만 많아졌고 아이디어가 빈약하거나 기술력이 취약한 경쟁력이 없는 기업의 창업이 많아졌다. 정부지원에 기대서 먹고 사는 기업을 양산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벤처생태계의 순환과정을 따라가 보면 생태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 "벤처 확인제도, 저기술 저위험 벤처기업 양산"

첫 단계인 벤처기업 확인제도부터 건강한 벤처기업 육성과는 거리가 멀다.

벤처기업을 가려서 금융, 세제상의 지원하기 위한 제도지만 경쟁력없는 벤처기업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병헌 교수는 “벤처기업 확인제도는 연구개발비가 전체의 얼마가 되는지 등의 평가기준을 충족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창업준비과정이나 창업초기 단계의 벤처기업을 발굴해 지원하기 어렵다. 또 요식화된 평가 틀이 있으니까 벤처기업들은 어떻게든 요건만 만족시켜서 그것만 따먹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역선택의 문제를 낳게 된다, 현재 벤처기업 확인제도는 저기술 저위험의 벤처기업을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국, '페이팔 마피아' 활약…살아있는 벤처 생태계"

벤처기업이 운영되는 단계에서는 벤처 전문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미순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역사는 20년으로 미국에 비해 아주 짧은 편이다.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사람이 나와서 자신이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벤처기업에 멘토 역할도 하고 필요한 도움도 줘야 하는데 지식이나 경험이 많지 않다. 유망한 벤처기업을 발굴하는 역량도 갖춰지지 않았다. 이것이 미국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지원 전문인력이 갖춰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우리와 미국은 벤처 전문인력과 관련해 생태계가 다르다. 우리나라는 벤처투자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가 주로 과거에 경제, 경영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창업을 해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벤처기업에 투자하면서도 성공할 지 간파할 수 있는 눈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에반해 미국은 전직 창업자나 기술자 출신이 많다. 기술을 알고 비즈니스도 알고 창업해서 성공해본 사람이 벤처기업의 창업에 도움을 주고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전설적인 창업자가 시장에 남아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페이팔 마피아’와 같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미국 벤처기업이 생명력있고 잘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벤처 생태계다”라고 말했다.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 : 핀테크의 원조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페이팔 출신의 투자자, 창업자를 일컫는 별칭. 이들은 안정적인 페이팔이라는 회사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시 창업하는 끊임없는 창업본능을 발휘하면서 실리콘 밸리의 주요 스타트업기업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피터 틸(페이스북 투자), 리드 호프만(비즈니스 네트워크사이트 '링크드인' 창업), 맥스 레브친(소셜 게임회사 '슬라이드'창업), 엘론 머스크(전기자동차회사 '테슬라 모터스'창업, 현실 속의 '아이언 맨'으로 불림), 스티브 첸(유튜브 창업) 등이 페이팔 마피아이다.>

◇ "투자자본 회수 안되는 것, 생태계 가장 큰 취약점 중 하나"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마지막 단계인 회수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벤처 투자자본의 회수가 힘들다는 점도 오래 전부터 제기된 문제인데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장정모 연구위원은 “투자 자본의 회수가 안된다는 것이 우리나라 벤처 생태계의 가장 큰 취약점 중의 하나다. 이것은 벤처기업이 회수할 만큼 성장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회수시장이 활성화 안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수는 벤처기업의 상장(IPO)이나 M&A(인수합병)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장은 너무 오래 걸리고 M&A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자자본이 잘 회수돼야 다시 벤처창업에 투자돼 벤처 생태계가 선순환될 수 있는데 그것이 막혀있는 현실에서 벤처기업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 "대학에서 창의적인 인재 공급 안돼"

바깥에서 벤처업계에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 우수한 인력을 공급해주는 공급원도 취약하다.

무엇보다 대학이 공급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순 연구위원은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에는 스탠포드나 버클리 등 대학에서 우수한 인력이 들어오는데 우리는 단절돼서 유입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우리나라는 대학 역량이나 경쟁력이 높은 편이 아니고 이공계 인력도 제대로 육성이 안되고 있다. 여기에 어려서부터 주입식교육을 받아왔다. 벤처생태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창의적인 인재들이 나와서 우수한 기술과 결합해서 창업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앞 단에서부터 공급이 안되고 막혀있다.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생태계와는 별개로 벤처기업의 글로벌 진출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김세종 원장은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은 협소한 내수시장과 급속한 기술변화로 성장한계에 조기 직면하는 경향이 강하다. 해외로의 진출이 불가피하지만 벤처 창업 당시의 목표시장과 비즈니스 모델이 국내 지향적이고 해외수출 기업은 33%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해외시장 개척에 필요한 역량 강화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벤처기업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글로벌시장에서도 통할 정도로 커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벤처생태계의 일대 변혁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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