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잠을 잔 뒤에 월요일 출근을 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댔지만, 당시 G20 회의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성토장으로 바뀌자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처럼 1년 전 19개국 정상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던 '왕따' 푸틴 대통령이 올해 터키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는 테러·난민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해결사'로 등극했다고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위상 변화는 이번 G20 정상회의의 가장 큰 화두가 된 테러뿐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핫이슈로 부상한 난민 문제에 직·간접적 원인이 되는 시리아 사태 해결에 있어 러시아가 매우 중요한 카드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정상들이 테러와 난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시리아 내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상황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인 푸틴 대통령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지난 9월부터 러시아가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명분으로 시리아에 공습까지 시작하면서 군사적 측면에서도 러시아와의 대화가 불가피해졌다.
아울러 부도 위기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채권국인 러시아는 중요한 당사자다.
이 때문에 서방 정상들이 러시아의 여러 행위에 대해 비난하는 것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사안에서 러시아를 무시할 수 없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잇따라 푸틴 대통령과 개별 회동을 갖고 시리아 해법 등을 논의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IS 격퇴를 위해 미국과 러시아가 연합해달라고 호소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G20 회의에서 마음 급한 세계 정상들이 푸틴 대통령에게 IS 척결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에 동참해달라고 '구애'하기 위해 줄을 늘어섰다"고 표현했다.
지난 15일 오바마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통역만 대동한 채 잔뜩 웅크려 머리를 맞댄 모습은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 이후, 그보다 앞서서는 지난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잔뜩 고조된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을 무색케하는 장면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러한 신분 격상을 즐기며, 이를 '고립 탈피'의 기회로 삼으려는 모습이다.
그는 G20 정상회의 마지막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방이든 동방이든 어떤 파트너와도 우호적 관계를 거부한 적이 없다"며 서방에 관계 회복을 제안했다.
우크라이나에 30억 달러 채무를 분할 상환해도 좋다며 '인심'을 쓴 것도 서방을 향한 화해의 제스처로 해석된다.
이 자리에서 그는 "비밀 하나 알려주겠다. 작년에 내가 G20에서 먼저 떠난 것은 '기술적 이유' 때문이었다. 출국을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싶진 않았을 뿐이다. 그 때도 지금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서방 정상들의 잇단 러브콜을 받고 푸틴 대통령도 이에 반색했다고 해서 이것이 곧바로 양측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지는 의문이다.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알아사드 대통령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이견이 있었다"고 말했고, 캐머런 총리는 "알아사드 문제에 있어 러시아와 서방간의 의견차가 엄청났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 내에서도 "푸틴 대통령이 알아사드 대통령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등 양측의 의견 일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푸틴 대통령 역시 "서방이 우리가 IS를 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 우리가 구체적인 증거를 대라고 하면 그들은 대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서방과 러시아 간의 불신이 여전히 극복할 수 없는 수준임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