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순서>
① 부정적인 이모티콘, 사용해도 될까요?
② 이모티콘과 함께 하는 '이모지' 씨의 하루
③ 이모티콘으로 전망하는 UFC 서울대회
30대 직장인 '이모지'(여) 씨는 이모티콘 마니아다. 이모티콘 스토어에서 주기적으로 신상 귀요미들을 구입하는 것은 물론, 이모티콘 캐릭터가 등장하는 웹드라마를 즐겨 본다. 요즘 푹 빠진 책도 이모티콘과 픽토그램으로만 지은 소설. 퇴근길에는 이모티콘 캐릭터 매장에 들러 콜라보 제품을 구입하는 게 취미다. 이모티콘과 함께 하는 '이모지' 씨의 하루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식사 후 '어피치'(Apeach)가 새겨진 치약으로 이를 닦은 후 '무지'(Muzi)가 그려진 파운데이션으로 화장한다. '프로도'(Frodo) 모양 핫팩을 재킷 주머니에 넣으면 출근 준비 끝.
카카오 프렌즈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이모티콘 캐릭터다. 어피치, 무지, 프로도, '콘'(Con), '네오'(Neo), '제이지'(Jay-G), '튜브'(Tube) 등 7가지가 대표적이다. 평소 카카오톡으로 지인들과 대화하면서 자주 사용했던 터라 더 없이 친숙하다.
특히 무지와 아파치를 좋아한다. 내 성격과 닮아서인지 두 캐릭터가 분신처럼 느껴진다. 토끼옷을 입은 단무지 무지는 호기심이 넘치고, 악동 복숭아 어피치는 과격하고 급하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일명 '카톡개'로 불리는 프로도가 가장 인기다. 프로도는 2015년 상반기 메신저 이모티콘 호출률에서도 1위에 올랐다.
마침 회사 근처에 카카오 프렌즈 정규 브랜드스토어가 있어 퇴근길에 종종 들른다. 국내 15개 매장 중 규모가 가장 큰 이 곳(코엑스점)에서는 1천 여가지 상품을 판매한다. 특히 기존 브랜드에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를 접목한 콜라보레이션 제품이 인기다.
카카오 프렌즈가 메이크업 브랜드 'VDL'과 협업해 지난 여름 한정판으로 내놓은 'VDL 카카오 프렌즈 컬렉션' 10종은 출시 6일 만에 1만 개가 완판됐다. 지금 쓰고 있는 무지 파운데이션은 그때 어렵사리 득템한 제품이다. 페리오와 협업한 치약은 올 상반기 콜라보 제품 인기 순위 2위였다.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프로도 모양 핫팩을 선물할 생각이다.
점심 식사 후에는 스마트폰으로 웹드라마 '시크릿 메시지'(총 18회)를 본다. 웹드라마가 그렇듯 회당 분량이 10~20분 안팎인데다 매주 월,수,금요일 오전 10시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짬내서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시크릿 메시지'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우현'(최승현)과 사랑의 상처를 간직한 '하루카'(우에노 주리)가 모바일 메신저로 대화하면서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을 그렸다.
모바일 메신저 '라인'이 제작에 참여한 이 드라마에는 브라운(곰), 코니(토끼), 샐리(병아리), 제시카(고양이) 등 라인 프렌즈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문자로만 대화하던 우현과 하루카가 이모티콘을 주고받는 장면은 두 사람이 한층 가까워졌음을 보여준다. 모바일 메신저에서 이모티콘이 감정표현 수단으로 쓰이듯 화면에 종종 출몰하는 브라운은 두 사람의 현재 심리상태를 대변해주기도 한다.
'시크릿 메시지'를 보면 97년 개봉작 '접속'이 생각난다. '접속'은 각자 반응 없는 사랑에 지쳐있던 두 남녀(한석규, 전도연)가 PC통신 속 만남을 계기로 서로에게 빠져드는 내용이다. PC통신이 모바일 메신저로 바뀌었을 뿐 디지털 대화를 통해 인연을 이어간다는 설정은 비슷하다.
우에노 주리를 캐스팅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일본 국민 69%가 '라인'을 사용한다. 덕분에 라인 프렌즈 캐릭터는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TV도쿄는 2013~2014년 애니메이션 '라인 오프라인-샐러리맨'과 '라인 타운'을 연달아 방영했다. 라인 캐릭터가 총출동한 모바일 게임 '라인 레인저스'는 2500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얼마만의 칼퇴근인가. 친구한테 자랑하려고 메신저를 켰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얼마 전 구입한 '전북 현대의 축구 일상다반사' 이모티콘(24종)을 사용하고 싶어서다.
올해 K리그 클래식을 2연패한 전북 현대는 최근 프로축구에선 처음으로 선수들 캐릭터를 활용한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출시했다. 경기장에 자주 가지 못해 아쉬웠던 찰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프로야구 두산 이모티콘 '철웅이'를 날려대는 친구를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최강희 감독 이모티콘을 애용한다. 뚱한 표정으로 흘리는 땀방울을 보면 닦아주고 싶다.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댄 채 '풉' 웃는 모습에는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친구들도 최 감독 이모티콘을 재밌어 한다. 명색이 K리그를 4차례 정복한 명장인데, 팬들은 위해서라면 기꺼이 망가지는 최 감독의 프로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전북 현대는 올 시즌 홈관중 30만2396명을 기록하면서, 구단 역사상 처음 30만 고지를 넘었다. 오는 21일 성남과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2만3874명을 모으면 올해 K리그 최다 관중 구단이 된다. 선수단 이모티콘 같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팬심을 얻는데 한 몫 했다. 21일에는 친구들에게 '오오렐레~' 이모티콘을 날려야지.
퇴근 후 며칠 째 똑같은 책을 읽고 있다. '지서: 점에서 점으로'(Book from the Ground: From Point to Point)라는 책이다. 이 책은 평범한 직장인 '미스터 블랙'이 24시간을 분주히 사는 모습을 그린 120쪽 짜리 소설이다. 특이한 건 문자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 책의 제목과 목차조차 단어가 아닌 아이콘으로 제시한다.
저자인 중국 예술가 쉬빙은 7년간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이모티콘과 픽토그램, 아이콘 2500여 개만으로 이 책을 지었다. '과연 그림언어만으로 의미가 전달될까' 호기심에 집어든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해석이 달리지니 자꾸 손이 간다.
상사로부터 갑작스러운 프레젠테이션 지시를 받고 당황하거나, 점심으로 스테이크를 먹을지 국수를 먹을지 고민하는 내용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직장인의 고충은 어딜가나 마찬가지구나' 싶어 위안이 됐다.
쉬빙은 "문화, 교육 수준, 언어에 관계 없이 문맹자도 이 책을 통해 읽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림언어의 한계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저자의 독창적인 시도는 존경스럽다. '아무나 읽을 수 있지만 누구도 똑같이 읽을 수 없다'는 것.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내 일상도 그림언어로 구성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