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에도 색깔론? 사이코패스 수준"

-새누리, 입은 삐뚤어도 말은 바로해야
-기준 편향? 전문분야 학자들 망라해
-마구잡이식? 과거 특위가 방해받아
-좌파 인사 면죄부? 여운형이 왜 친일?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친일인명사전이 아니라 친일마녀사전이다.’ 어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저희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서울시내 모든 중고등학교에 배포하기로 한 이 친일인명사전을 두고, ‘친일파가 아닌 인물들까지 친일파로 규정해서 마녀사냥을 하는 사전이다’ 이런 뜻으로 말을 한 건데요. 이건 하태경 의원만의 입장이라기보다는 지금 새누리당의 입장입니다. 집권여당이 친일 인명사전 배포 자체를 반대하고 나선 거였습니다. 내용도 문제고, 집필한 단체도 문제라는 새누리당의 입장. 이 입장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측의 반응은 어떨까요? 오늘 직접 들어보죠.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교육홍보실장 나와 계십니다.

[김현정의 뉴스쇼 전체듣기]

◇ 김현정> 실장님, 안녕하세요.

◆ 박한용>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어제 방송은 들으셨습니까?

◆ 박한용> 직접 못 듣고 어제 보도된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 김현정> 확인하셨군요. 이 사전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게 우선 새누리당의 핵심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검증도 안 된 기준을 갖고 일방적으로 친일 여부를 결정해서 마녀사냥을 하는 사전이다. 심지어 친일인명사전 아니고 친일마녀사전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런 얘기까지 하셨어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박한용> 우리나라 속담에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입 구(口)’자를 정사각형으로 씁니다. 지금 하태경 의원이나 새누리당은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전체 장관, 의원들까지 거의 정상적인 사람들의 상식적인 발언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 김현정> 상식적이지 않다..?

◆ 박한용> 억지소리고, 모함이죠. 예를 들어서 저희들이 검증 안 받았다는데 친일인명사전 18년 동안 걸려서 만든 거예요. 박정희 대통령의 총 집권기간 만큼이나 시간을 들여 만든 전문 사전입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되는 박지만 씨조차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전에 수록됐다고 해서 발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바도 있습니다. 아주 혹독하게 검증을 받고 나온 책입니다.

◇ 김현정> 혹독하게 검증을 받고 나온 책에 대해서 자의적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신데. 그러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검증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실 수 있습니까?

◆ 박한용> 일단 친일인명사전이 나올 때 편찬위원회가 2001년에 만들어집니다. 작업은 1991년부터 시작을 했지만요. 우리는 해방 후부터 반민특위 때까지 모든 친일 반민족적인 관련된 청산 입법제안들까지도 모두 다 검토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여기에 따라서 다시 학계의 의견과 편찬위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공청회를 3번 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선정 기준안을 만들었고...

◇ 김현정> 혹시 그 과정에서 전문가나 이런 분들이 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아니냐? 이런 질문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 박한용> 그때 저희들이 명단 다 공개했습니다. 역사학자만이 아니고 전문 분과들이 많습니다. 문학, 영화, 음악 이런 식으로요. 저희들이 전 분야에 걸쳐서 흔히 말해서 좌익 인사들만 모을 능력도 없고요, 오히려 좌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요. 친일인명사전에 소요되는 전문 분야의 학자들까지 망라돼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 김현정> 그러면 한 몇 분 정도나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셨을까요?

◆ 박한용> 직간접적으로 230여 명이 됩니다.

◇ 김현정> 230여 명이 참여했다.

◆ 박한용> 적어도 국정교과서 집필한다는 40명보다 5배입니다.

◇ 김현정> 공청회도 3번 열고, 그리고 또 어떤 것들이 있었죠?

◆ 박한용> 그리고 나서는 230여명의 편찬위원회를 구성해서 편찬위에서 나온 기준안을 다시 재검토하고 그다음에 분과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각 분야별로 문화, 음악, 영화, 역사, 정치 이런 식으로요. 그 다음에 상임위원회를 또 구성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조사 결과에 따라 개인 행적들에 대해서 다시 재검토를 합니다. 그래서 바로 예를 들자면 분과위원회에서는 문학분과라면 문학분과의 대여섯 명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만장일치로 합의를 해야 합니다. 사전 수록대상을요.

◇ 김현정> 그러니까 A라는 인물을 인명사전에 넣기 위해서는 만장일치가 되어야지만 넣는 방식을 택했다?

◆ 박한용> 네. 참고로 문학분과 같은 경우는 친일인명사전에 반대하시는 분들도 함께 저희가 초빙해서 검토를 했습니다.

◇ 김현정> 친일인명사전에 반대하시는 분들도 들어갔어요, 검토할 때?

◆ 박한용> 그때 작품에 대해서 작가 연구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한 분이라도 이견이 있으면 보류 조치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학계에서 한 명이 이견이라도 생기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새누리당스럽게 이견을 제시하면 안 되는 거지만요. 전문가적 견해가 필요한 거겠지만요. 이렇게 해서 내부에서 최종 인물을 선정하는데 3단계를 거쳤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 박한용> 그렇게 하고 나서 기자회견에서 명단을 다 공개했습니다. 유족들의 개인 명단과 주소를 모르기 때문에 언론에 광고까지 냈고, 하여튼 이의 신청을 받아서 이의 신청한 사람에 대해서는 재심의를 하고 그렇게 해서 최종 확정한 것입니다.

◇ 김현정> 그런데 하태경 의원은 어떤 이야기를 했냐면요. ‘반민 특위 때 친일행위로 규정된 사람은 682명이었고. 노무현 정부 때 정부차원에서 친일행위자로 판명한 것은 1006명이었는데, 민족문제연구소 사전에는 무려 4400명이나 들어갔다. 이건 마녀사냥을 위해서 친일행위 안 한 사람까지 과도하게 포함시킨 것 아니냐?’ 이런 문제제기하시던데요.

◆ 박한용>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 김현정> 웃기는 얘기입니까?

◆ 박한용> 기초가 확실히 안 된 사람이죠.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그런 사람이 옛날에 진보 운동을 했다니, 예전에 사상운동을 했다고 떠드는 게 참 민망합니다. 반민특위 같은 경우에 애초에 1948년 9월에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49년 2월에 사실상 반민특위 습격사건으로 활동이 중단이 되어서 활동이 1년도 채 안 됩니다. 1년도 채 안 되고. 두 번째 이유는 원래 애초에는 7000여 명을 조사 대상으로 했어요. 그런데 이승만 정권의 방해에 의해서 실제로 1년도 안 돼서 해체가 되면서 10분의 1밖에 실제로 조사를 못한 거예요.

◇ 김현정> 10분의 1도 못한 겁니까?

◆ 박한용> 그럼요. 반민특위 박사학위 논문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실형도 12명밖에 살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반민특위의 미완의 친일파 청산이라고 얘기하고, 독립운동가들이 친일파에게 역청산당했다는 사례로 반민특위를 들고 있지 않습니까?

친일인명사진(사진=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 김현정> 노무현 정부 때는 그러면 어땠습니까? 1006명밖에 안 나온 것은 왜 그런 걸까요.

◆ 박한용> 노무현 정부 때는 그 당시에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서 아주 강력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잘 아다시피 그 당시에 한나라당이 다수당이었지 않습니까? 다수의 야당이었던 당시 한나라당에서 강력한 반발을 하면서 입법 자체가 진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입법 자체가 대단히 축소가 됐던 것이에요.

◇ 김현정> 축소가 된 것이다?

◆ 박한용> 그렇게 하면서 반민족행위자 같은 경우에는 마땅히 역사적 처벌을 물어야 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극악하고 극렬한 친일을 했던 사람들로 아주 좁게 제한됐던 것이죠. 그래서 사전이름도 ‘친일인명사전’이 아니라 친일 다음에 반민족 행위라는 말까지 엄중하게 붙어서 사전이 나왔던 것입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 박한용>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런 데에서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나 동아일보 김성수 사장도 그런 수순으로 반민족행위자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 김현정> 그러면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목한 4400명도 예를 들어서 ‘그 당시에 하위 관리직이었던 분들, 일제강점기에 억지로 부역했던 사람을 넣는 건 과하지 않느냐?’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계시는 데 그런 문제는 어떻습니까?

◆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게 마녀사냥하지 말고, 깃털을 이야기하지 말고 몸통을 얘기해야 한다는 거죠, 구조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새누리당이나 일베에서 주장하는 ‘면서기하면 친일파?’라는 얼토당토 안 하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 김현정> 그런 사람이 빠졌습니까? 하위 관리직들은?

◆ 박한용> 저희들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직위를 기준으로 한 것과 행위를 기준으로 한 두 기준이 있습니다. 사실 직급이 얼마나 높냐는 책임과 연결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영향력하고요. 그래서 저희들은 고등관 이상으로 했습니다.

◇ 김현정> 고등관 이상의 직책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행위가 엄중했던 사람들? 친일행위가?

◆ 박한용> 고등관 이상의 경우에는 대표적으로 군수들입니다. 그 다음에 육군 소위 이상. 이들의 경우에는 지속성, 자발성,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매우 크고. 그다음에 고등관 중에서도 특히 군수가 5등 사무관입니다, 이 경우 당시 조선에서 이들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 행정직급이에요. 그리고 경찰 같으면 경부, 헌병 같으면 헌병 오장, 분대장이죠. 이것이 바로 직급이고. 그다음에 직무로써는 고등계 형사 같은 경우에는 말단이라도 넣어야 되겠죠. 독립운동가들을 전문적으로 하니까. 이렇게 해서 돼 있고. 그 가운데에서도 4000명 중에 한 1300명 정도는 말단에서 이른바 토벌대를 했던 행위범들이에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이 정도로 듣고 이건 넘어가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드릴 게 많아서요. 청취자 손진영 님도 문자를 주셨는데 ‘어제 하태경 의원께서 친일인명 사전에 우파쪽 친일인사는 많이 넣고 좌파쪽 친일인사는 빠져 있더라.’ 이런 주장을 하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반박해 주십시오라고 문자 보내셨어요. 반박해 주세요.

◆ 박한용> 하태경 의원이 먼저 빠져있는 좌파가 누군지, 우파 좌파로 나눌 능력이 있으면 한번 나눠 보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윤치호와 여운형, 둘다 한일합방을 권유했는데 윤치호는 보수쪽이고 여운형은 좌쪽이어서 여운형은 빠졌다, 이건 잘못됐다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임꺽정을 쓴 소설가 홍명희도 예로 드셨고요.


◆ 박한용>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예요. 윤치호는 천하가 다 아는 최고 친일파 아닙니까? 최특급 친일파였고요. 그다음에 몽양 여운형 같은 경우에는 1910년 당시에 강원도로 학교를 세우셨어요. 학교를 세워서 강원도로 가다가 이른바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다가 망명을 준비합니다. 뉴라이트 그들의 주장대로 일제 말에 모두가 순직해서 친일을 선택했을 때, 유일하게 조선독립을 전망하고 건국동맹이라는 전국적 조직을 만들어서 독립을 지휘해 나갔던 사람이 바로 여운형 선생입니다. 시종일관 항일로 나갔던 분이고. 그냥 홍명희 씨가 왜 친일입니까?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를 계속 하고 있어요. 제가 볼 때는 홍명희 씨 집안의 위에 선대 한 분이 친일을 했어요. 그래서 친일인명사전에 들어가 있고요.

◇ 김현정> 집안 사람이 들어가 있다?

◆ 박한용> 직계로서요. 그리고 홍명희 씨는 전혀 무관한 분입니다.

◇ 김현정> 새누리당에서는 사실 이 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 자체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창립 선언문을 읽어봐라. 이 민족문제연구소는 통진당과 흡사한 곳이다. 대한민국을 반민족 범죄자들과 외세와 결탁해서 세운 나라라고 창립선언문에 써놓은 곳, 반민족적이고 반민중적인 나라라고 써놓은 이 단체는 좌편향 종북단체다’ 이렇게 주장하는데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 박한용> 그렇게 되면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도 동일하게 통합진보당이겠네요. 생각을 해보십시오. 해방 직후에 만든 제1공화국은 그 당시에 미 군정보고서에서조차도 일제 때 친일경찰의 80% 이상이 군과 경찰 요직을 찬양했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통계까지 나와 있어요.

그리고 나서는 어떤 정치학자는 일본군이 한국군으로 바뀌었다는 정보를 탈취할 정도가 돼버렸어요. 그리고 세계일보에서 민족문제공동조사했던 게 있어요. 2000년대 중반에요. 1공화국부터 제3공화국까지 친일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요직을 차지했는지 봤을 때 핵심들은 그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대부분 장관 이상이었고.

◇ 김현정> 그러니까 객관적인 창립선언문에 넣은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무리하게 좌편향, 종북단체로 몰고 있다, 이런 주장이시군요.

◆ 박한용> 제가 볼 때 통합진보당이 법에 의해 강제 해산되지 않았습니까? 색깔론이라는 게 나왔죠.

◇ 김현정> 색깔론을 지금 뒤집어씌우고 있다?

◆ 박한용> 네 해방이후의 친일파들한테는 단골메뉴예요. 단골메뉴가 뭐냐하면 한마디로 하면 이 색깔론이 지금 정상적인 것도 아니지만. 거의 사이코패스 수준의 나오는 발언들 같아요.

◇ 김현정> 사이코패스 수준으로 색깔론을 지금 뒤집어 씌우고 있다?

◆ 박한용> 왜냐하면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런 말은 엄청나게 위험한 발언입니다.

◇ 김현정> 어제 하태경 의원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회적 합의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하셨는데. ‘이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렇게 충분하지 않은데. 각 학교에 어떻게 배포를 하겠느냐?’라고 하셨는데.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보세요.

◆ 박한용> 사회적 합의라고 하는 말이 역사적 의무와 사회적 합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친일인명사전이라는 것은 이미 1992년도부터 시작이 돼 왔고, 그다음에 친일문제도 하나의 연구 분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친일인명사전을 만들 때 일제강점기 인물을 조사하는 그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을 때 이것을 보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해줘서 열흘 만에...

◇ 김현정> 시민 성금으로 만든 것인데 왜 사회적 합의가 안 됐냐는 말씀이세요.

◆ 박한용> 그렇게 해서 오히려 그 정당성이 더욱 확인됐었죠. 유일하게 반대하던 사람들은 바로 자기들의 직계 조상들이 친일로 몰려있는 사람들이었어요.

◇ 김현정> 여기까지 오늘 말씀 듣도록 할 텐데요. 짧게 공식 대응 계획 있으십니까?

◆ 박한용> 지금 국회의원은 입법 기관입니다. 이렇게 무책임한 발언에 터무는 없는 말들, 낭설, 유언비어, 흑색선전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아마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여기까지 말씀 듣죠.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교육홍보실장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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