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친일인명사전' 드골 대통령 손에 들렸더라면?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반세기나 지난 지금, 나치 독일에 부역한 반민족 행위자를 재판정에 세우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인간적으로는 안 된 일이지만 역사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입니다.”

프랑스 <르몽드> 기자의 질문에 한 중학생이 대답한 내용이다.

‘모리스 파퐁’은 나치 부역 사실을 숨긴 채 프랑스 정부에서 승승장구해 1958년 드골 대통령 시절 파리 경찰국장, 그 후 예산장관까지 역임하는 등 고위 공직자 생활을 한 인물이다. 그의 반민족 행위가 4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밝혀지면서 1998년 재판정에 불려나온다. 파퐁은 이 재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힌다. 그는 나치 점령시절 유태인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는 문서에 서명한 장본인이었다. 재판정에 불려나온 그는 90살 고령이었다.

잘 아는바와 같이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철저한 청산으로 프랑스인이라는 자부심을 확인시키고 더불어 국론을 통일시켰다. 그 중심에 드골 대통령이 있었다.

“국가가 애국적 국민에게는 상을 주고 민족 배반자에게는 벌을 주어야만 비로소 국민들을 단결시킬 수 있습니다. 나치독일 협력자들의 범죄와 악행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 전체에 전염하는 흉악한 종양들을 그대로 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150만~200만 명이 나치협력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체포된 사람만 99만여 명이나 된다. 숙청재판소는 6천766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렸고 그 중 782명을 사형에 처했다.


드골은 나치독일에 협조한 반민족행위자들을 철저하게 청산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치독일에 ‘민족의 혼과 정신’을 팔아먹은 민족반역자는 프랑스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나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한바탕 전쟁을 치른 여야 그리고 보수와 진보, 좌우 진영이 이번에는 서울시 교육청의 ‘친일인명사전’ 배포를 놓고 맞서고 있다. 여당은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고 야당은 배포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이 왜 배포되어야 하는지, 왜 배포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진영별 논리는 단순하다. 보수진영에서는 반민족친일 청산 문제가 계속될수록 편향된 역사논리가 활개를 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진보진영에서는 반민족 친일세력에 대한 올바른 학습으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방 후 반세기가 훌쩍 지났는데도 대한민국은 반민족친일 청산을 제때 하지 못한 실수로, 통일된 국론은 고사하고 좌우 양 진영이 보이지 않는 전선(戰線)을 사이에 두고 싸운다. 서로에게 저주를 퍼부어 가면서 싸우느라 지칠 법도 한데, 도무지 식을 줄 모른다. 왜 그럴까. 청산 대상이었던 친일 후예들이 다수 주류사회를 장악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반면 일제에 맞서 투쟁했던 애국지사들의 후예들은 주류에 밀려 세(勢)가 미약하고 빈곤하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양심적 세력과 올바른 역사관을 지닌 세력들이 고군분투 그들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런 가운데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이 반민족친일의 후손들에게 ‘주홍글씨’처럼 버티고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누구나 망각하다 병들고 늙어 죽지만, 낙인처럼 지워지지 않는 ‘친일인명사전’은 청산 못한 대한민국 역사에 등불 같은 지적(知的) 무기물이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친일인명사전’을 중·고교생들이 보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반민족친일에 대한 청산을 거부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했다고 판단한 4천300여 명의 이름이 정리돼 있는데, 이 사전을 2016년 새 학기 시작 전까지 서울 시내 580여개 중·고등학교에 배포한다는 게 서울시 교육청 계획이다.

대한민국은 반민족친일자들의 명단이 담긴 사전을 갖고 있으면서도 청산은 엄두도 못 내는데, 프랑스는 40여년 뒤에 드러난 나치 부역자 90세 노인을 재판정에 세워 감옥에 보낸다. 프랑스의 청산 정신이 부럽다. 그나마 우리에게는 ‘친일인명사전’이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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