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선택” 발언은 대통령의 선거 개입 여지와는 별개로 가뜩이나 청와대의 기류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심장을 겨냥한 화살로 작용했다. 독이 묻어 있는 화살(정치생명을 끊을 수 있는)을 발사한 것이다.
야당은 즉각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고 비판했고, 여당 내에서는 친박이냐, 비박이냐에 따라 입장이 갈렸다. 친박은 천군만마와 같은 발언이라고 옹호했다. 반면 비박 의원들은 ‘우리를 다 내치겠다는 것이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심지어는 “열린우리당 지지발언을 한 노무현 대통령과 뭐가 다르냐”, “우리(비박)의 목줄을 끊으려는 것”이라는 불만을 표출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은 누구이며 진실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일까?
“진실한 사람들”이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쓴소리를 일체 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협조하거나 적극 변호하는 골수 친박 의원들이다. 또한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장관직과 청와대를 그만둔 비서관들일 것이다. 박 대통령 이름을 팔아 당선되겠다는 신참내기 정치 지망생들일 수도 있다. 윤상현 의원은 이와 관련해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이란 나라와 국가를 위해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자 일을 잘 하는 사람으로 보면 된다”고 규정했다. 새누리당 의원들 가운데 박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윤 의원의 말인 만큼 박 대통령을 위해 성심성의껏 일을 잘하는 의원들이나 공직자들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강한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뜻을, 의중을 잘 따르는 사람들이 “진실한 사람들”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신자들이라는 해석이다. 한 의원은 “박 대통령이 그동안 얼마나 뼈에 사무쳤으면 국무회의에서 이런 극단적인 발언을 했겠느냐”며 “유승민 전 원내대표 파동 때의 배신의 정치 발언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정치인은 “진실의 반대말은 배신이며 배신자를 심판해달라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회법 파동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 6월 말 언급한 배신의 정치 심판론에서 한 치도 벗어났거나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 의원은 “대통령이 참으로 무섭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면 진실한 사람이고, 비판하거나 자기 정치를 하는 사람은 배신자로 구분했다는 데는 이론이 별로 없는 듯하다. 한 정치 평론가는 “누가 보더라도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인식은 칼로 두부를 자르는 것”이라며 “비박 또는 친박에서 비박으로 전향한 의원들을 떨어뜨리라거나 공천에서 탈락시키라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충성’ 대 ‘배신’의 이분법적인 심판론은 내년 4월 13일 선거 때까지 지속될 것 같다. 직접적으로는 여야 정치권을 쉼 없이 공격할 개연성이 크다. 지난 10일 국무회의 때 발언보다 더 강한 어조로 여의도를 공격할 지 모른다. “민생법안을 방치하면 국민이 용서 안할 것”이라거나 “국회가 국민의 삶과 대한민국 경제를 볼모로 잡고 있다”는 10일 국무회의 비판 발언은 서곡에 불과할 수 있다. 국민의 정치 불신과 19대 국회의원 불신 풍조에 기름을 끼얹어 현역 심판론(불가론)을 계속 점화하려 할 것이다. 사실 여의도 정치권이 대통령의 공격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구 획정을 차일피일 미루며 끌고 있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 선택, 국민 심판 요청에 대한 언론의 비판(10일자 신문 사설들은 일제히 비판)을 모를 리 없는데도 3개월 여만에 또다시 강조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강심장의 정치다.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정치인도 박 대통령 밖에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2월 방송기자클럽회견에서 “우리 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으로 탄핵소추를 당했다.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선택’ 메시지는 일차적으로 정치적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역 유권자들을, 다음으로는 부산·경남의 보수적인 유권자들, 더 나아가 강원도와 충청, 수도권 지지자들의 결집을 염두에 둔 것이자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여전히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하나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국민이 적게 잡아도 25~30%는 된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누구를 진실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동물적 감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선택(당선)’ 메시지는 '양수겸장'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국민을, 부수적으로는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를 겨냥한 발언이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듯이 들리지만 실제로는 새 인물(내사람)을 대거 공천하라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도 들린다. 공천권의 상당 부분을 청와대에 넘기라는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지난 8일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상에서 기자들에게 “공천에서 공정성만큼 중요한 것은 참신성”이라는 윤상현 의원의 발언은 박 대통령의 심중의 일단과 거의 동일하다. 윤 의원은 "지난 총선 때 대구.경북 의원들을 60% 물갈이 하는 바람에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60%는 마지노선이라는 설명이다.
김무성 대표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을 제아무리 칭송한다고 할지라도 현역 공천을 위한 오픈프라이머리성 국민경선제를 고수하는 한 청와대와 친박으로부터 ‘무늬만 충성’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압박의 강도는 도를 더해갈 것이다. 감내하는 데만도 상당히 버거울 것이다.
청와대·친박과 일전을 벼르자니 용기와 결전의 의지가 빈약하고, 고개를 숙이고 모든 권한을 줘버리자니 국민과 비박의 눈이 매섭다는 것을 김 대표는 잘 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정치를 하는 이유’라는 김 대표로선 그 어떤 선택도 쉽지 않다. 적절한 선에서 타협의 묘수·기지를 발휘하고 국면을 벗어날 수 있다.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선택 발언이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11일 입을 굳게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