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횡설수설’의 고수다. 그는 경박한 처신으로 여야 모두로부터 지탄을 받은 지 오래다. 여기서 이 말 하고 저기서 저 말 하며 국가 기밀을 마구 흘려 ‘정보 장사꾼’이란 소리도 들었다. 2011년에는 '천안함 폭침'을 '침몰'로, '연평해전'을 '연평패전'이라 불러 물의를 일으켰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핫라인으로 상시 통화를 했었다"는 주장을 했다가 문제가 되자 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8월 팩스 한 장으로 보수여당인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냈다. 비난이 쇄도하자 9일 ‘국민께 드리는 해명의 글’을 통해 “국가안보와 남북평화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국회 마이크가 주어진다면 남북관계에 전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자신감과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함’과 ‘연평해전’에 대한 그의 수상한 발언이 생생하게 살아있는데도 말이다.
한 술 더 떠, 이번에는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내 기본적인 정서나 내 주변은 약간 보수적이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나하고 정서가 맞다”고 말했다. 이 만하면 ‘횡설수설’의 고수로 뽑는다 해도 이의를 제기할 국민이 없지 않겠는가.
한국사 국정교과서 대표집필진에 참여했다가 자진사퇴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도 횡설수설 계에 빼놓을 수 없는 고수다. 그는 대표 집필진으로 초빙된 경위를 묻는 기자 질문에 “그냥(나는) 방패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는가 하면, “그 사람들이 나를 고마워 해야지”라고 말했다. 존경 받아온 원로 사학자요 국가의 사관(史官) 신분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도 감추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건만, 입이 간지러웠던 건지 품위없이 술술 털어놓았다.
게다가 집으로 찾아온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는 성희롱 발언까지 해 물의를 일으켰다. 취해서 실수를 했으면 깨끗이 인정하고 ‘술이 원수다’ 정도로 매듭지으면 될 일을 구차할 만큼 변명을 늘어놓았다. “중국어로 ‘니 헌 피아오량(너 참 예쁘다)’이라고 말했지만 성추행은 없었다”고 부인했다가, “술 먹은 사실은 기억나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기억력에 핑계를 대더니 급기야 “잘못했다고 하니 잘못한 것이고, 해명할 필요는 없다”는 희귀한 변명을 했다.
최 명예교수는 대표집필진에서 사퇴한다는 발표를 하기 30분 전까지도 “집필에 참여하기로 한 것에 후회가 없다”며 “물러날 뜻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돌연 교육부에 전화를 걸어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최 명예교수는 짧은 사흘 동안 횡설수설의 진수를 골고루 보여준 뒤 사라졌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은 말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는 뜻이다. 말문이 왜 막히느냐면, 너무 어이없어서 말하려고 해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래 불교에서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심오한 진리’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말(言)도, 도(道)도 다 끊어진 경지’라는 뜻이었지만, 지금은 속뜻보다는 문자의 날것 그대로 통용된다.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힐 때 즐겨 인용되는 구절이다.
휴일이었던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장관 자리를 물러난다고 했던 정종섭 행정자치부장관의 말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지난 8월 새누리당 연찬회에 참석해 “총선! 필승!” 건배사를 제의했다가 곤혹을 치른 뒤 정 장관은 사과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총선 출마설을 묻는 기자 질문에 “그에 대한 생각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랬던 정 장관이 8일 사퇴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 출마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을 안했는데, 물러난 이후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생각하겠다”고 말해 ‘혹시나’ 했던 기자들에게 ‘역시나’ 소리를 내지르게 했다. 불과 두 달 전 총선 불출마라는 문짝에 대못을 박았던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중히 생각하겠다’는 쪽으로 말을 바꾸니 역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다.
그가 자신의 장관직 사퇴를 알리는 데 휴일 기자회견을 연 것도 ‘언어도단’과 도진개진이다. 태풍이나 지진 등 천재지변이 일어났거나 대형사고 혹은 메르스 같은 전염병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장관 사퇴를 발표하는 것도 말문이 막히는 일이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며 횡설수설 하는 사람이나, 출세와 성공에 눈이 멀어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언어도단의 고수들이 우리나라 정치와 학계의 고수들이기도 하니, 이 일을 어이할꼬. 말문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