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논란에서 한목소리를 냈던 비박계와 친박계는 대구.경북(TK) 지역 등 새누리당 텃밭 지역에서의 전략공천 여부를 놓고 한판 전쟁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김무성 대표가 인물만 괜찮으면 전략공천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발언을해 공천룰 싸움이 본격화 되기도 전에 한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 친박 속속 TK 집결 "총선 앞으로"
그동안 잠잠했던 새누리당 공천룰 갈등이 다시금 촉발된 것은 내년 총선 출마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사의 의사를 밝히면서 부터다.
정 장관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가 발전과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생각"이라며 사의 표명 이유를 밝혔다.
자신의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다분히 총선 출마용 사의 표명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르면 이번주 중으로 정 장관을 비롯해 내년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장관들에 대한 인사를 위한 개각을 단행할 전망이다.
정 장관의 총선 출마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그가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파동 이후 물갈이설이 계속 제기됐던 TK 지역에 출마할 계획이라는 점이다.
정 장관은 고향인 경주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유 전 원내대표의 바로 옆 지역구이자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유성걸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갑도 출마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어 TK 물갈이의 선봉에 설 가능성이 높다.
역시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은희 의원 지역구인 대구 북구갑에는 전광삼 전 춘추관장이, 유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에는 친박계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출마를 기정사실화 한 상태다.
◇ 친박 "경쟁력 있는 인물로 TK물갈이 해야"
문제는 정 장관을 비롯해 이들 친박계 인사들이 아무리 '박근혜 마케팅'을 펴더라도 현재 김무성 대표가 추진하고 있는 상향식 공천제를 통해서는 공천을 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책임당원과 일반국민이 일정 비율에 따라 참여해 경선을 치르는 상향식 공천제 하에서는 정치신인이 인지도와 조직력 면에서 월등한 현역 의원의 프리미엄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
친박계 핵심 윤상현 의원이 유 전 원내대표의 상가 조문 뒤 "TK에서 물갈이를 해서 '필승 공천' 전략으로 가야 한다. 안 그러면 수도권 민심에까지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역설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한마디로 TK 지역에서 현역 의원 컷오프와 전략공천을 통해 대폭적인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천권을 쥔 지난 19대 총선 당시 TK 지역 물갈이 폭은 60%에 이르렀다.
친박계 한 핵심의원은 "구체적인 공천룰은 특별기구에서 정하겠지만 우선추천제를 통해 경쟁력 있는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고 TK 물갈이설에 힘을 보탰다.
또 다른 친박계 의원은 "김 대표는 권력자의 개입을 막아 공천의 공정성을 살리자는 취지지만 선거는 공정성만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경쟁력 있는 인물을 공천해야 전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헌.당규상 우선추천제는 정치적 소수자 추천이나 공천 신청자가 없는 경우, 또는 신청자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우에 실시가 가능하다. 하지만 친박계는 TK지역이나 강남지역에서 우선추천제를 도입해 사실상 전략공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비박 "상향식 공천한다는데 웬 전략공천?"
반면 비박계는 "전략공천은 없다"는 김 대표의 선언대로 인위적인 현역 의원 물갈이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비박계 의원은 "상향식 공천을 통해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전략공천이나 현역 컷오프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책임당원과 일반국민 비율에 대해서도 "상향식 공천의 취지를 살려 일반국민 비율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게 우리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비박계 의원 역시 "전략공천이 없다는 것은 이미 정리된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오픈프라이머리를 당론으로 채택한 당에서 그 취지를 살려야지 갑자기 전략공천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비박계 대표인 김무성 대표가 스스로 괜찮은 인물을 내세운다면 전략공천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해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김 대표는 9일 서울 대치동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율곡포럼 특강에서 함께 자리한 강남 지역구 의원이자 같은 외교관 출신인 심윤조(강남갑), 김종훈(강남을) 의원을 가리키며 “전략공천을 해도 이런 분들만 하면, 내가 절대 반대 안 하겠다”라고 말했다.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김 대표 측은 "지역구 행사에서 지역구 의원을 띄워주기 위해서 농담으로 한 발언이지 전략공천을 하겠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TK 물갈이론으로 다시금 공천룰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이같은 발언을 두고 그동안 공천룰과 관련해 계속해서 청와대와 친박계에 밀린 김 대표가 이번에도 한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