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 구성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의 당사자, 현정택 정책조정수석의 말이다.
지금은 하차한 최몽룡 전 서울대 명예교수의 4일 취중진담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돼 CBS는 이날 밤 10시 현 수석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최 교수에게 전화해 기자회견 참여를 종용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모두 부인했다.
혹시 오해가 있나 싶어 '누군가를 통해서 그런 말씀을 건네지 않았나'라고 물어도 "내가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현정택 수석이 누구인가?
경제 관료를 거쳐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정책비서관과 여성부 차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고 이후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로도 재직하다 현 정부 들어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거쳐 '청와대 왕수석'으로 불리는 정책조정수석을 맡았다.
그런 그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싶었다.
반면 최몽룡 교수가 털어놓은 진술은 너무나 자세했다.
"술을 마셨어도 나와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기자들이 불만이 많아 몰려갈지 모른다고 경고도 했다…"
그래서 또 묻고, 다시 물었다.
모두 세 명의 취재기자가 연이어 전화로 물었지만 그의 답은 한결같이 "(최 교수와) 아는 사이이지만,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현정택 수석은 청와대 개입 파문이 확산되자 "최 교수와는 아는 사이이고 제자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몰려가서 만류도 한다는 소식 등을 듣고, 걱정이 돼 전화한 것일 뿐"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의 거짓된 언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 수석은 최 교수에게 기자회견 참여를 종용하기 하루 전 당·정·청 고위급회담에 참여해 '교과서 국정 전환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놓고 왕수석으로서 집필진에 직접 종용 전화를 했고, 그것도 모자라 거짓 해명을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청와대 측 반응이다.
청와대 일개 직원이 아니라 수석비서관이 정국의 핵심 이슈에 직접 관여했다는 논란에 대해 "알고 있지 않다, 확인도 안해봤다"고 일관했을 뿐이다.
최소한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야당의 요구 역시 한쪽 귀로도 듣지 않은 모양새다.
이러한 오만과 불통에도 청와대가 나름 자신이 있는 건, 어떻게든 관심을 틀 수 있고 이에 맞춰 대중은 금세 기억을 잃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성추문으로 최몽룡 교수가 낙마한 뒤 '청와대의 거짓말'은 국정 교과서가 솎아낼 역사의 어느 단락처럼 흔적없이 사라졌다.
이러니 "총선에 나갈 생각이 없다"던 장관이 두달 반만에 "의견을 듣고 신중히 결정하겠다"며 출마 뜻을 내비치는 일이 가능하고, 최근까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이 역시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도 '대리기사가 운전했다'며 버젓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이제 또다시 '거짓말 판별대'에 중요한 발언이 올랐다.
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역사 왜곡 논란이 일자 황교안 국무총리와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한 목소리로 "정부를 믿어달라" 한다.
그 거짓 여부의 최종 확인은 역사가 할 테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앞서 판단해야 할 역할은 국민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