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 깊숙이 위치한 수상한 건물, 사람들은 한 번 그곳에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탈출을 위해 2층에서 뛰어내리다 허리를 다치기도 했고, 누군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채 뛰쳐나와야 했다.
그곳에 갇힌 경험이 있다는 미진 씨(가명)는 "산꼭대기 큰 빌딩에다 언니들을 가둬놨는데, 철조망이 있어서 나갈 수도 없고 도망은 죽어도 못 간다"고 전했다.
그곳은 도망을 꿈꾸기 힘들 만큼 완벽하게 격리된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몽키하우스라고 불렀다. 한 마을 주민은 "여자들이 한 100명도 있었을 것"이라며 "막 뛰어넘고 울고불고 난리 쳤다고 한다. 교도소나 마찬가지였단다"고 말했다.
전 몽키하우스 관계자는 "차에다 태워가지고 오다가 여자들이 도망가려고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려 몇 사람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했다.
교도소는 아니지만 교도소만큼이나 엄격하게 출입이 통제됐다는, 경기도 곳곳에 있는 몽키하우스에 갇힌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아가씨들이었다. 그녀들은 한국 전쟁 이후 주한미군 주둔지 인근에 머물며 주한미군을 상대하던 성매매 여성들이었다.
'낙검 수용소'라고도 불리는 몽키하우스는 국가가 주도해 주한미군을 상대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성병을 진단·치료해 온 여성 성병진료소였던 것이다. 그곳에 여성의 인권은 없었다. 국가가 나서 국민의 인권을 짓밟았던 셈이다.
전북 군산의 작지만 화려한 마을도 몽키하우스만큼이나 출입이 통제됐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던 그 마을은 '특별한 손님', 즉 주한미군만을 위한 비밀 장소였다고 한다.
그곳 마을 주민들은 "낮이고 밤이고 (손님들을) 실어 날랐지. 24시간 장사를 했으니까요. 술 마음대로 먹지, 당구 치지, 아가씨들이 10명씩 돌아가면서 춤도 추었어요" "거긴 유명한 곳이었어요. 마을이 오픈 돼 있는 게 아니라 울타리가 쳐 있다고 봐야 돼요"라고 전했다.
한창 때, 주말이면 1000명 넘는 손님들이 다녀가곤 했다는 마을에는 현재 의문의 작은 방들만 남겨져 있다. 이 방은 이 마을을 찾는 주한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가 이뤄졌던 곳이다.
이 마을 역시 당대 군부의 최고 권력을 지녔던 이가 주도해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6월 25일, 법정 앞에 모인 122명의 사람들은 모두가 외면하려 했던 이 진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이들이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있었던 이야기다.
주한미군의 성욕 해소를 위해 국가권력이 앞장서 자국 여성의 인권을 유린했던 현장, 몽키하우스 문제는 지금도 진행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