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팬들에게는 추억의 이름, 조니 맥도웰이 요즘 자주 회자된다. 애런 헤인즈(고양 오리온) 때문이다. 좀처럼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맥도웰의 외국인선수 최다득점 기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헤인즈는 7일 오후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KCC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원정경기에서 3쿼터 중반 자신의 16득점째를 만들어냈다.
타이 기록까지 14점을 남겨뒀던 헤인즈는 이로써 난공불락과도 같았던 맥도웰의 7,077점을 뛰어넘어 프로농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헤인즈는 총 18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통산 7,081점을 올려 국내선수를 포함한 통산 최다득점 순위에서는 8위에 올랐다).
◇한때 외국인선수 하면 맥도웰이었다
맥도웰은 1997년 프로 출범 첫 해부터 리그를 지켜본 팬들에게는 추억을 자극하는 이름이다. 당시 농구 인기는 높았고 맥도웰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외국인선수였다. 동네 농구 코트마다 두터운 상체와 파워가 넘치는 농구를 구사하는 '맥도웰' 한 명씩은 있었다.
맥도웰은 1997-1998시즌부터 4시즌 동안 대전 현대에서 뛰었고 이후 인천 SK에서 2시즌을, 울산 모비스에서 KBL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보냈다. 총 7시즌 동안 정규리그 통산 317경기에 출전해 평균 22.3점, 12.1리바운드, 4.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프로농구 외국인선수 관련 누적 기록 부문은 대부분 맥도웰이 1위에 올라있다. 득점(7,077점), 리바운드(3,829개), 어시스트(1,418개), 스틸(508개) 등에서 1위다. 매시즌 냉정한 평가를 받고 재계약 혹은 리그 잔류 여부가 결정되는 외국인선수의 사정상 맥도웰의 아성을 뛰어넘는 선수는 나오기는 힘들어 보였다.
맥도웰의 활약이 더 주목받았던 이유는 그가 1997년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9위 지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뒤에서 두 번째로 선발된 그가 리그를 평정한 것이다. 이상민과 환상의 '픽-앤드-롤' 콤비를 이뤘고 놀라운 골밑 장악력을 선보였다.
맥도웰 때문에 단신 테크니션들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다. 마르커스 힉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맥도웰처럼 키는 작아도 힘이 강한 파워포워드형 단신 외국인선수가 득세했다. KBL이 올 시즌을 앞두고 단신 외국인선수 제도를 부활시켰을 때 "맥도웰 같은 선수가 올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맥도웰의 존재감은 은퇴 후에도 강하게 남아있다.
◇생존의 아이콘 애런 헤인즈
헤인즈는 2008-2009시즌 도중 대체 외국인선수 자격으로 서울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KBL은 자유계약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2009-2010시즌에도 대체 선수로 울산 모비스에 입단했다. 2010-2011시즌 다시 삼성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헤인즈는 3시즌 동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2011-2012시즌 다시 대체 선수로 들어와 창원 LG에서 뛰었다.
이처럼 헤인즈는 '대타' 인생을 살았다. KBL 구단들에게 헤인즈는 '먼저 지명하기는 애매하나 남 주기는 아까운' 선수였다. 그러나 헤인즈는 2011-2012시즌 LG에서 평균 27.6점을 기록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서울 SK는 2012-2013시즌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헤인즈를 지명했다. 헤인즈는 당시 인천 전자랜드에서 뛴 리카르도 포웰과 더불어 포워드 농구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헤인즈가 3년 연속 SK에서 뛰던 시절 SK는 정규리그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진출 등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추일승 오리온 감독은 올해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권으로 헤인즈를 뽑았다. 정통 센터 대신 헤인즈를 지명한 오리온의 선택을 두고 기대 반 우려 반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헤인즈는 이날 경기 전까지 평균 27.3점을 올렸다. 오리온은 개막부터 1위를 놓치지 않고 있고 헤인즈는 정규 1라운드 MVP를 받았다.
◇헤인즈의 대기록, 왜 위대한가
맥도웰이 뛰었던 기간은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농구가 펼쳐졌던 시기다.
예를 들어 1997-1998시즌의 리그 평균 득점은 91.7점, 대전 현대의 평균 기록은 96.6점이었다. 맥도웰이 뛴 2003-2004시즌까지 리그 평균 득점은 주로 80점대 중반부터 90점대 초반에 형성됐다. 맥도웰이 대전 현대에서 보낸 4시즌 동안 팀이 기록한 평균 득점은 무려 91.9점이었다.
반면, 최근 7시즌 동안 리그 평균 득점은 한 번도 80점을 넘기지 못했다.
리그의 페이스(pace) 차이도 컸다. 1997-1998시즌의 경우 한 팀의 한 경기 평균 공격 횟수가 약 77회였다. 최근 프로농구에서의 페이스보다 8회 정도 더 많다. 공격 템포가 더 빨랐다. 게다가 프로농구는 최근 10년 동안 수비에서 놀라운 발전을 보여왔다.
평균 90점 이상을 기록한 팀에서 평균 20점을 올리는 선수와 평균 70점대를 기록한 팀에서 20점을 올리는 선수의 가치는 다르다.
맥도웰의 대기록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맥도웰이 프로농구가 가장 공격적이었던 시절에 압도적인 공격력을 발휘했다면, 헤인즈는 공격 템포가 느려지고 각 팀의 수비 전술이 크게 발전한 시절에 꾸준히 득점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또 맥도웰의 시대에는 외국인선수 2명이 동시에 뛰었다.
헤인즈는 올 시즌까지 총 8시즌 동안 358경기에 나섰다. 맥도웰의 기록을 넘기까지 더 많은 경기수가 필요했다. 총 출전 시간은 맥도웰이 더 많다. 맥도웰의 평균 출전시간이 34분을 넘는 반면, 헤인즈는 통산 평균 26분을 기록하고 있다.
헤인즈는 주전으로 나설 때나 교체로 나설 때나 꾸준히 득점 감각을 유지했고 또 발휘했다.
자유계약에서 드래프트로 제도가 바뀌고 외국인선수에 대한 평가가 점점 더 냉철해진 최근 분위기에서 8시즌이나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헤인즈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장신 센터를 선호하는 분위기에서 포워드가 이토록 장기간 뛰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헤인즈는 자주 팀을 바꿨지만 목표는 오로지 한 가지, 승리 뿐이었다. 추일승 감독은 "대기록 달성이 다가와도 헤인즈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점이 헤인즈가 대단한 이유"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