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구렁이 류현진(28 · LA 다저스)과는 다소 다른 타입이다. 류현진도 강속구를 갖고 있지만 서클 체인지업이라는 무기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것을 일삼는다. 구속 변화의 달인 칭호를 얻기도 했다. 타자들을 윽박지르기보다 살살 구슬려 방망이를 유도한다.
김광현도 체인지업 장착을 시도하지 않은 게 아니다. 직구-슬라이더 투 피치 투수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변화에 도전한 바 있다. 지난해 즈음부터 체인지업을 간간이 던졌지만 잘 듣지는 않았고,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로도 충분했기에 제 3의 구종은 뜸했다.
그런 김광현이 다시 변화에 나섰다.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를 앞두고서다. 평가전 격인 4일 쿠바와 '2015 서울 슈퍼시리즈'에 선발 등판한 김광현은 체인지업을 던졌다. 그 비슷한 공도 던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각이 엇갈린다. 본인은 만족했지만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랬을까.
▲김광현 "체인지업 안타 맞아서 더 만족"
4일 김광현은 3이닝 동안 3피안타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6-0 완승의 발판을 놨다. 투구수는 38개. 당초 예상됐던 50개에서 12개 적었다. 제구가 잘 돼 볼넷이 없었고, 쿠바 타자들도 덤볐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투구 분석표에 따르면 최고 148km를 찍은 직구가 15개, 예의 슬라이더가 17개로 역시 주를 이뤘다. 여기에 커브가 5개, 체인지업이 1개였다. 다만 김광현 본인은 체인지업을 2개 던졌다고 했다. 이날 내준 3안타 중 직구가 1개, 체인지업이 2개였다고 했다.
변화에 대한 시도를 했고, 나름 의미있는 성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특히 프리미어12 개막전 상대인 일본을 고려한 변화다. 김광현은 "일본 선수들도 많이 전력 분석할 것"이라면서 "예전에 일본전에서 실패가 한번 있어서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비록 안타가 됐지만 체인지업이 제구가 됐다는 것에 주목했다. 김광현은 "원래 체인지업은 볼이 되고 자신없게 빼는 공으로 인식돼왔다"면서 "그런데 오늘은 스트라이크로 들어가 안타를 맞아 너무 만족한다"고 웃었다. 이어 "잘 맞은 타구도 아니었고 텍사스성 안타가 됐다"면서 "타이밍을 뺏느냐가 중요한데 그게 된 것 같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김인식 "직구-슬라이더와 차이가 난다"
다만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김광현의 변화에 대해 특유의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어설픈 면이 남은 데다 자칫 장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섞였다. 그러면서 연마를 더해 완벽해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 감독은 쿠바와 경기 뒤 김광현에 대해 "빠른 공을 던지고 슬라이더를 던지는 패턴은 굉장히 좋다"고 칭찬했다. 이어 "다만 그 외의 공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잘 던져줬다"고 말했다.
김광현은 체인지업 외에 그 비슷한 공을 던진다. 직구 그립으로 힘을 빼고 120km대의 공을 뿌리는 것이다. SK 관계자는 "올해부터 하위 타선을 상대로 간간이 타이밍 잡을 때 살살 던지는 직구를 선보였다"면서 "상대가 빠른 공 노리고 들어올 때를 감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투 피치 투수로 인식되는 만큼 효과를 노린 것이다.
다만 체인지업성 공은 장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볼이 되면 카운트 싸움에서도 불리해진다. 이 관계자는 "체인지업도 지난해부터 시도를 했는데 가운데로 몰리면 장타가 되고 볼이 많아서 잘 안 던졌다"고 덧붙였다.
변화는 반갑다. 그러나 자칫 이도 저도 아니게 되면 어정쩡해진다면 위험하다. 김 감독의 염려는 그 때문일 것이다.
김 감독의 반응에 대해 김광현은 "투구 폼이 달라서 그러신 것 같다"고 말했다. 숙제는 상대 타자들이 구질을 예측하기 어렵도록 폼을 다듬는 일이다. 일본은 특히 현미경 분석으로 유명하다.
일본과 개막전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과연 김광현이 그동안 체인지업을 갈고 닦아 제 3의 무기로 만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