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재판 당시 주범으로 지목됐다 무죄가 확정된 리(36)는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가 세면대 거울을 통해 패터슨의 범행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이번 재판의 피고인 패터슨(36)은 "뭔가 보여줄거라던 리가 피해자인 조씨를 공격했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피했지만, 이따금 눈이 마주칠 땐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다.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심규홍 부장판사) 심리로 대법정에서 열린 패터슨에 대한 첫 정식 재판에서 리는 첫 증인으로 출석했다.
리는 "저는 그저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며 "세면대 거울을 통해 패터슨이 대변기 칸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고는 갑자기 피해자인 조씨를 찌르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너무 놀라서 제가 돌아섰고, 조씨가 오른 손으로 패터슨을 때리려고 한 장면을 본 것 같고, 패터슨은 계속해서 조씨를 찌르는 모습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조씨가 목을 붙잡고 넘어질 듯 무릎을 굽히는 것을 보고 저는 화장실을 나왔다"는 게 그의 증언이다.
범행 전 'I'm going to show you something cool, come in the bathroom with me(멋진 걸 보여주려고 해, 화장실로 나를 따라 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는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전혀 없다"고 시종일관 답변했다.
리는 또 범행에 쓰인 22㎝짜리 칼도 패터슨이 여자친구에게 햄버거를 잘라줄 때 봤지만, 자신은 "손을 댄 적이 없다"고 했다가, 이어진 변호인의 질문에는 "칼을 만진 적이 있다. (동석했던) 모두가 만졌다"고 다소 엇갈린 답변을 했다.
패터슨 측이 "화장실의 좁은 구조상 거울로는 리의 주장대로 조씨의 위치가 보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잘 보였느냐"고 묻자, 그는 "봤다"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봤더니 패터슨이 계속해서 조씨를 마구 찔렀다"고 설명했다.
패터슨 측은 리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었지만 당시 현장을 촬영한 사진에는 세면대에 혈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점에 비춰 리씨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맞섰다.
첫 재판에서 주범으로 지목됐던 리의 무죄가 확정된 것은 당시 목격자였던 패터슨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피고인과 목격자가 뒤바뀐 이번 재판에서도 증인 리의 진술이 믿을만한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추가 신문에서 리에게 당시 범행 장소였던 화장실 도면을 보여준 뒤 그가 조씨와 얼마만큼 떨어져 있었는지 직접 법정에서 검사들을 피해자와 피고인의 위치에 세워보게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재판장이 패터슨에게도 범행 당시 상황의 재연을 주문하면서, 패터슨은 리와 달리 설명했고, 그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패터슨은 "리가 뭔가 보여준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조씨가 (소변을 보고) 나가면 뭔가 보여줄 거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리가 조씨를 공격해 매우 놀랐다”면서 "저는 화장실을 이용하지도 손을 씻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패터슨과 리 모두에게 당시 흉기에 찔린 조씨가 어느 방향으로 돌아섰는지 등에 대해 물었고, 두 사람 모두 반시계방향이라고 답해 큰 차이는 없었다.
이와 함께 리는 검찰 측 신문에서 "검찰이나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전문 통역이 전혀 없었고, 첫 경찰조사 때는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강압 수사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은 리씨가 경찰에서 진술한 조서들을 증거에서 철회했다.
한편, 조씨의 어머니는 이날 법정에서 첫 발언 기회를 얻고선 "억울한 아들을 위해 진짜 범인을 최고형의 엄벌에 처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조씨의 어머니는 당시 현장 사진들이 증거로 제시되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다 재판정 밖으로 자리를 한동안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