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논어에서 최고의 정치적 자질로 설파한 質直而好義(질직이호의-바탕이 곧고 바른 것을 좋아하는)형의 정치인이다. 사술을 많이 쓰는 정치인들 중에서 보기 드문 인간애를 지니고 있다.
주류인듯 주류가 아니고 비주류인듯 비주류 같지도 않은 독특한 정치를 한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정두언 의원은 지난 2007년 12월 대선이 끝나자마자 이명박 정권의 실세로 꼽혔다. 인수위 핵심 멤버로 들어갔을 때 공무원 사회에서는 ‘정두언 의원을 통해야한다’는 말까지 회자됐다. 정두언의 천하는 '3일 천하'처럼 짧았다. 알고 보니 실세는 이명박 당선자의 친형인 이상득 당시 국회부의장과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씨였다. 그리고 영포회(경북 영일-포항 출신 공직자들)였다. 이명박 정권 말기에 억울하게 구속되기까지 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 정권의 실세로 다시 부상할 수도 있다는 견해가 나왔다. 그러나 그는 실세는커녕 허세 중의 허세 또는 미운털이 박힌 오리 신세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을 이끌 때 무명의 최경환을 천거해 경제부총리(현 정권의 최고 실세로 통함)로 등용되도록 한 사람이 유승민 의원이지만 박근혜 정권의 권력의 무게로 볼 땐 유승민은 최경환의 그것에 비해 조족지혈이었다. 최경환의 권력의 무게가 1톤이라면 유승민은 1근도 안 된다.
정두언은 이명박 정권을, 유승민은 박근혜 정권을 탄생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자명의 사실이다. 그들의 역할은 그것까지가 전부였다. 개국공신이지만 주군(권력)으로부터 내침을 당했다. 처지도 비슷하다. 내년 총선 공천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정두언·유승민은 태생적으로 권력을 향유하거나 이권에 개입하고 금품을 챙길 인물들과는 거리가 있다. 성정이 바르고 직언을 하는 스타일이다. 이를 반영하듯 박근혜 정부의 국정에 대해 가끔 쓴소리를 넘어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힌 것도, "KFX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소신에 가깝다.
유승민·정두언은 중도성향이다. 이념과 지역, 계층, 세대 간 벽을 넘어서야만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수 있고 선진국으로 진입할 것이라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지난 4월 원내대표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여와 야,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 진영의 논리에 빠져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았다"며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합시다"라고 주창했다. 야당 의석으로부터 열화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정두언 의원은 "최고의 명 연설이었다"고 극찬했다. 둘은 정치적 지향점과 이념적 스펙트럼이 거의 비슷하다.
그렇지만 상당히 다르다. 정두언 의원은 내지르는 방식을 선호한다. 반면 유승민 의원은 신중하다 못해 좀 소심하게 비쳐진다. 둘의 쓴소리, 비판이 옳은 말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을지언정 큰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세상을 소용돌이치게 할 용기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철인정치'의 최고의 덕목 가운에 지혜와 절제력은 있으나 용기가 뒷받침하지 않는다. 또한 세력이 없다. 아직까진 세력을 만들지도 않는다.
내년 4월 총선에서 살아 남으면 뭔가 이루기 위해 뜻을 함께 할 듯하다. 서로 공개적으로는 언급을 꺼리지만 내년 총선 이후 정치권에 상당한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는 공감한다. 진영을 극복할 정치 세력의 출현 같은 결사체의 필요성에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야당 일각(천정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 등)에서는 정두언·유승민 의원이 큰 일을 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유승민·정두언은 그럴 의향이 전혀 없다. 새누리당을 버리고 큰 판을 그리려 한다거나 정국을 요동치게 할 의지가 보이질 않는다. 유승민 의원은 최근 대구·경북 지방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고, 정두원 의원도 "그런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새누리당을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하는데 일조를 하겠다고 밝힌다. 실제로 정두언·유승민 같은 건전 보수를 지향하는 정치인이 있기에 새누리당의 건강성이 살아 숨쉰다고 분석할 수 있다.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가운데 남·원이 떠난 자리를 정두언·유승민이 톡톡히 메우고 있는 셈이다. 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정두언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빠져버리면 수구 꼴통당이라고 해도 될텐데...”라며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새누리당의 친박계는 때때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친박 진영을 괴롭힌다며 정두언·유승민 의원을 '사갈시' 하지만 그 둘이 있음으로 인해 새누리당의 다양한 인적 구성을 국민 앞에 자랑할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새누리당 의원은 "새누리당에 유승민·정두언 의원이 많아져야 시대 흐름에 충실한 정당의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면서 "그들의 미래는 새누리당의 미래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새누리당에서도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을 중도 보수 성향의 정치인들로 대체하고, 새정치민주연합도 친노나 486운동권 출신들을 배제한 자리에 중도 진보 성향의 전문가 집단을 많이 투입해야만 대한민국의 정치가 확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정두언·유승민은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이념적으로는 중도층, 세대로는 40~50대 유권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소구(어필)형 정치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