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올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지역사업 챙기기에 혈안이 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이 부스러기 조각예산으로 분산돼 별 의미 없이 공중분해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 국회 상임위, 내년 총선 앞두고 ‘묻지 마’ 예산 증액
국토교통부가 올해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한 2016년도 정부예산안은 21조6,593억 원이다. 이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했던 2015년 당초 예산안 22조7,000여억 원에 비해 4.6%나 감소한 규모다.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가 내년도 SOC사업 예산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상임위 예비심사를 벌이면서 정부안 가운데 겨우 16억 원만 삭감하고 대신 2조3,758억 원을 자체 증액했다. 지역의 도로 개설과 교차로 개선, 하천정비사업 등에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선심성 예산을 증액 편성한 것이다.
결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올라간 2016년도 국토부 예산안은 24조335억 원까지 부풀려졌다. 정부안 보다 11%나 늘어났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의 경우도 2016년도 정부예산안으로 14조2,882억 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해 편성했던 2015년도 정부예산안 14조940억 원 보다 1.4% 늘렸다.
그런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정부예산안 가운데 2,550억 원을 감액하고, 대신 1조7,989억 원을 자체 증액했다. 순수 증액분만 1조5,4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정부예산안 가운데 3,700억 원을 삭감하고 대신 1조 500억 원을 자체 증액해 6,800억 원이 순 증가했던 것과 비교해 무려 2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농해수위도 전국 수리시설과 농업용 관개수로 예산 등을 집중 배정했다. 전적으로 농촌지역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생색내기용이다.
◇ 총선 맞이 '봉숭아학당' 재연…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하지만, 이처럼 국회 상임위원회가 자체 증액한 예산은 국가재정법상 반드시 정부의 동의를 얻도록 돼 있다. 결국, 국회의원들이 아무리 예산을 부풀려도 전체가 반영되는 일은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지난해에도 2015년도 당초 정부예산안 보다 3조4,000억 원을 증액했지만 이중에 겨우 9%인 3,000억 원만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도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의원들도 상임위에서 예산을 아무리 많이 증액해도 예결위와 정부 협의 과정에서 많아야 10% 정도만이 살아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이 상임위 예비심사 과정에서 예산을 터무니없이 부풀리는 이유는 뭘까?
국회 예산처리 과정은 이렇다. 먼저 각 상임위원회가 정부예산안을 심사한 후 예결위에 올리면, 예결위는 다시 심사를 벌여 각 상임위 예산안을 손질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예결위는 각 상임위원회와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와 정부 부처의 동의를 얻는 계수조정을 거쳐, 확정된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한다.
이처럼 예결위 계수조정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의 이른바 쪽지예산이 등장한다. 상임위 의원들이 자체 편성한 지역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되거나 줄어들 경우 쪽지예산을 집어넣게 된다. 이렇다 보니, 상임위 의원의 예산 부풀리기는 쪽지예산에 앞서 ‘밑져야 본전’, ‘아니면 말고’식의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나쁜 관행이 됐다.
기재부의 또다른 관계자는 "요즘 국회의원들의 예산심사 과정을 보면 TV 개그프로에 나왔던 봉숭아학당을 보는 느낌"이라며 "지역만 챙기다 보면 국가 전체예산을 못 보고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올해 최악의 쪽지예산이 등장할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이 표를 의식해 부처 장.차관에게 오히려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행정부에 대한 견제, 감시기능은 뒷전으로 밀린지 오래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