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전선에 있던 많은 독립운동가와 지식인, 기업가들의 신념도 이 즈음 흔들렸다. 1941년을 전후로 '항일'과 '친일'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이다. 목숨 걸고 항일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때 변절하고 만다. 일본은 난공불락의 동아시아 유일의 제국이자 아시아대공영(大東亞共榮)의 중심국가로 번영할 것이라는 망령 혹은 환상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1941년의 저주'에 걸려든 인물 가운데 하나가 춘원 이광수다. 우리나라 대표적 지식인이자 당대 최고의 소설가였던 그는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대륙을 점령해 나가자 흔들렸던 건지도 모른다. 섬나라 일본이 황제의 나라 중국을 향해 호령하는 것을 보고, 예술가다운 명민함으로 깊은 절망과 미래 청사진을 동시에 읽어낸 것일 수도 있다. 중일전쟁에 이어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까지 전선이 확대되자 사라진 조국을 향한 절개를 슬그머니 내려놓은 것 같다.
이때 항일독립투사와 양심적 애국인사 대부분이 변절하거나 친일로 돌아선다. 일본의 무시무시한 군사력과 힘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운명은 끝났다고 확신한 것이다. 불사조 같은 일본이 불과 4년 뒤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사라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1941년의 저주'에 걸려들었다. 그는 애국자이기도 하지만 친일행각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1941년 이전까지 김용주는 애국자요 항일운동에 적극 가담한 기업인이었다. 1927년 항일단체였던 신간회 영일지회 설립총회 멤버였고, 1925년에는 야학을 열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일경에 체포되기도 했다. 1936년에는 항일운동 본거지였던 포항 영흥학교가 존폐 위기에 처하자 사재를 기부해 학교를 살렸다. 1938년에는 경북도의회에서 일제의 '강제면작' 정책으로 피해를 본 농민들에게 국가가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41년 이후 김용주는 자신의 인생행로를 친일로 바꾼다. 1941년 친일단체인 경북수산연맹 이사에 선임됐는가 하면 1942년 일본군 군용기 헌납에 27만원을 모금한다. 1943년에는 징병제 실시 감사운동의 내용이 실린 광고주 명단에 포함된데 이어, 1944년 전투기 헌납운동 광고주 명단에 이름이 실린다.
그렇다면, 한 인물이 한때는 항일을 했고 또 한때는 친일을 했다면, 그 행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애국자·친일파> 라고 병기해야 할까.
항일했던 것도 친일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평가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읍소는 형평성만을 놓고 보면 맞다. 그러나 애국과 친일은 저울에 달아 무게를 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더구나 변절이라는 '양심'의 문제가 걸려 있다.
친일을 일삼다가 회개를 통해 항일운동으로 인생을 바꾼 경우는 과거 행적에 대해 국민들이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항일운동을 하다가 친일로 돌아선 경우는 다르다. 당사자는 억울하겠지만 나라 잃은 백성들이 볼 때 변절이고 배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친일했던 사람이 과거 항일하던 때의 행적을 인정해 달라거나 친일 행적을 눈감아 달라는 것은 도를 넘는 주장이다.
김무성 대표가 29일 경북 포항을 찾아 부친이 설립한 포항 영흥학교를 방문한다. 그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시대 민족교육에 이바지했던 공과는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1941년 이후 친일 행적을 보인 부분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 받아야 공평하고 떳떳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