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기가 뭐예요? 김유정의 당당한 성장일기

[노컷 인터뷰] "연기는 나를 깎아 가져가는 감각…지금 이 순간이 중요"

영화 '비밀' 출연배우 김유정.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아이는 소녀가 되고, 소녀는 여인이 된다. '12년'은 바가지 머리로 광고에 나와 사랑 받았던 꼬마 숙녀가 진짜 숙녀가 되기 충분한 시간이다.

취재진 앞에 앉은 배우 김유정에게서는 어느 새 잘 자란 숙녀의 태가 났다. 아직 완벽히 여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아주 소녀는 아닌, 소녀와 여인의 경계 어딘가.

김유정은 영화 '비밀'에서 아픈 비밀을 간직한 채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여고생 정현 역을 맡았다. 제 또래 캐릭터지만 이전보다 감정의 층이 깊어져 매력적이기도, 어렵기도 했다.

"정현이 표정이 달라질 때가 있어요. 대본을 봤을 때 정현이 캐릭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친아버지가 있고, 키워준 아버지가 있는데 두 아버지들에 대한 여러 가지 마음이 비춰지고 감춰지기를 반복한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속으로 외로움을 감추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극 중 정현은 성적도 우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팔방미인으로 등장한다. 실제 자신의 학교 생활을 이야기하는 김유정은 딱 그 나이 또래 여고생이었다.

"친구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항상 웃으려고 하고요. 학교를 많이 빠지고 그래서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하죠. 수업을 계속 빠지고 그러면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고요. 미안한 마음이 커서 그러지 더 친근하게 대하고 싶고 그래요. 원래 성격은 낯을 많이 가려서 정말 친하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 아니면 얘기를 잘 안해요."

영화 '비밀' 출연배우 김유정.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연기와 학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제 뜻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욕심은 부리되 그걸 위해 노력이라도 했다면 위안을 삼아야 되지 않나 싶어요. 너무 둘 다 잡아야 겠다고 생각하면 둘 다 놓치게 돼요. 어떻게 해야 될 지 고민이 많죠. 그래도 배우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많은 분들이 저를 사랑하고 좋아해주시니까요."

자신을 알아봐주는 대중들에게는 항상 감사한다.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죄송한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다. 가끔은 가면을 쓰고 놀이공원에 가는 일탈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런 김유정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은 바로 영화와 여행이다.

"저는 혼자서 국내 배낭여행을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자전거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거죠. 촬영을 하면서 여러 장소를 가봤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가족과 여행 가는 게 올해 목표예요. 언니와 둘이 여행가는 것도 소원이죠. 함께 일본에 가자고 약속을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에 나왔던 장소는 다 가보고 싶어요. 좋아하는 영화는 '러블리 본즈', '레인 오버 미', '로렌스 애니웨이' 등이에요."


또래 소녀들과 달리 아이돌 가수보다는 매니아 층이 두터운 가수들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가수들이 MC를 맡은 SBS '인기가요'에는 나오지 않는다며 아쉬워하기도.

"박효신 님, 스웨덴 세탁소 분들을 좋아해요. 방송 활동을 잘 안하시니까 시간 나면 공연에 놀러가기도 하고 그래요. 저번에 DJ DOC 분들이 15세 관람가 콘서트를 한 적이 있는데 김창렬 선배님이 초대해 주셨거든요. 너무 재밌는 거예요. 짧은 시간 안에 열기를 느끼는 게 재밌더라고요. 정말 멋있고, 재밌고, 스트레스 푸는데 도움이 됐어요."

영화 '비밀' 출연배우 김유정.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다시 '비밀' 이야기로 돌아갔다. 한층 깊은 캐릭터를 연구하고 연기해서일까. 김유정 스스로도 영화를 통해 성장한 지점을 느끼고 있었다.

"감독님이 두 분이라 두 배로 배운 것 같기도 하고, 깨달은 것도 많아요. 연기를 하면서 무언가에 부딪쳤을 때,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어요. 저 혼자 이겨내고, 버텨내고 생각하고.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영화죠. 아무래도 연기는 제 자신에게서 오나 봐요.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내 안에 무슨 모습이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 자신이 알아달라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만약 배우하지 않았으면 뭐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김유정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표정이었다.

"생각을 안해봤어요. 이것 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가 않네요. 배우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갖는다거나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답이 안 나와요. 그냥 살이 좀 쪄있지 않을까요? 식탐이 많은데 일부러 줄이기도 했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데 배우가 아니었으면 먹고 움직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머리에 염색도 하고, 다른 애들하는 것처럼 화장도 하고…. 그냥 똑같았겠죠."

김유정에게 아직 예능프로그램은 '무서운' 존재다. 그래도 '인기가요'에서 낯간지러운 대사를 하는 것은 좋단다.

"약간 놀러가고, 스트레스 풀러 가는 느낌이에요. '인기가요'가 워낙 가족같은 분위기라 힘든 점은 없어요. 그런 대사들도 평소에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요. (웃음) 예능프로그램은 게스트면 재밌고 좋은데 살짝 무서워요. 제가 말하는 게 크게 비춰지고 그래서 말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냥 작품을 더 하고 싶은 욕심이 크죠."

못다한 학교 생활 때문일까. 김유정은 유독 학교를 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 애착이 크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과 MBC 드라마 '앵그리맘' 출연자들과의 시간은 그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저는 학교 생활이 나오는 작품이 좋아요. 이제껏 맡아왔던 역할에 학교 생활 모습이 많이 없긴 하죠. 친구들과 반에 앉아서 수업을 받는 장면을 찍는 게 제일 좋아요. 정말 학교 친구 같거든요. 아직까지도 영화 '우아한 거짓말' 친구들끼리는 만나서 인사하고 그래요. 제게는 그곳이 또 다른 학교가 되는 거니까 추억이 많이 남아요. '앵그리맘'도 학교 등교하는 기분이었어요."

영화 '비밀' 출연배우 김유정.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학교'라는 작은 사회를 건너뛰고 먼저 사회에 나온 것. 김유정은 그 장단점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너무 많이 아는 것'이 꼭 좋지 만은 않다. 그러나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거기 때문에 확실히 좋지 않은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는 작은 사회라는 말이 있는데 먼저 나와서 사회를 배운 거니까 아쉽고 서운하죠. 이미 저는 생각보다 많은 걸 깨달았고, 또래에 비해 성숙해보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좋은 면도 있어요. 일단 말을 잘할 수 있게 되고, 훨씬 더 많이 배우고, 더 큰 일들을 하면서 상처 받았을 때 잘 이겨낼 수 있는 연습을 하게 되죠. 물론 친구들은 학교에서 그걸 경험하겠지만요."

'앵그리맘'과 '비밀'을 함께 찍으면서 김유정은 또 한 번 새로운 체험을 했다. 성인 배우들이야 늘 느끼는 감각일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 깨달음이었다.

"두 작품 캐릭터들이 모두 어두운 면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끝나고 나서 그 친구들을 떠나보낼 때 굉장히 어려웠어요. 쉽게 떠나보내지 못했고, 결국 멀어져 갈 때 저를 깎아서 가져가는 느낌이 들었죠. 되게 무서운 거구나. 처음으로 그런 어려움과 힘듦을 느꼈어요."

처음부터 김유정이 이렇게 여물었던 것은 아니다. 생각이 깊어지고 내면이 잘 익어가기 전까지 수많은 아픔이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싫었어요. 견디기도 싫고, 왜 이겨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혼란스러웠는데 겪고 또 겪으니까 더 단단해지고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고 받아 들이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어머니가 더 상처받고 더 힘들텐데 더 강해져야 한다고 해주신 말씀을 새겨들었어요. 상처 받고 아파하고, 그 순간에 힘든 게 있죠. 그게 시간이 지나면 한 걸음 계단 위로 올라가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쌓이기도 하고요. 분명히 희열은 느끼는데 되게 애매하죠."

일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의 기쁨과 김유정의 그것은 다르지 않다. 언제나 안식처가 되는 가족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다.

"일이 다 끝나고 집에 가면 너무 행복해요. 연기할 때도 행복하고, 그런 희열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제가 살면서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가족 곁으로, 집으로 돌아갈 때 그 느낌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어요. 며칠 동안 촬영하고 가면 감동이 밀려올 때가 있어요. 가장 편하고 힘이 되는 곳이에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서 잊고 있을 수도 있지만 김유정은 지금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도약하는 과정에 서 있다. 네버랜드에 사는 팅커벨처럼 김유정은 빨리 어른이 되고픈 마음도, 불안한 마음도 없다. 그저 이 순간이 소중하고 즐거울 뿐이다.

"갑자기 이미지 변신을 한다거나 그러고 싶지 않아요. 원래 저는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거든요. 현재 맡을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어요.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제 선택은 똑같아요. 이 순간 후회없고, 즐겁고 행복하면 된 거죠. 스무살 넘어서도 학생 역할을 계속하고 싶기도 해요.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간다는 강박에 연연하지 않아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 갔던 것 같아요. 스트레스 받기 보다는 지금 겪어볼 수 있는 경험들을 많이 겪어보고,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빨리 스무살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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