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화, TF 그리고 거짓말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비밀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26일 오전 비밀 TF팀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서울 혜화동 한국방송통신대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회관의 한 사무실에 교육부 쇼핑백이라고 적힌 상자가 놓여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교육부가 ‘국정화 TF'를 외부에서 비공개리에 가동중이라는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거짓말 논란 때문이다.


야당이 공개한 문건을 보면 교육부는 3개팀 21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국정화 발표 이전부터 가동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획과 상황관리, 홍보 등으로 업무가 세분화돼 있고, 청와대의 일일점검회의도 지원하도록 돼 있다.

언론관리도 TF의 몫이다. ‘기획기사 언론섭외, 기고·칼럼자 섭외, 패널발굴·관리’가 적시돼 있는 점을 볼 때 우호적인 여론조성을 위한 활동도 주요 기능으로 보인다.

조직의 실체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청와대도 TF의 존재를 인정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국정화 여부는 교육부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밝혔는데, 26일에는 “교육문화수석 차원에서 상황을 관리한다든지 하는 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교육부가 국정화 TF를 운영하고 청와대에 일일보고를 해 온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부 정책의 투명성은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우선 국정화TF라는 비밀조직의 운영 자체는 국민을 전혀 납득시킬 수 없는 황당한 발상이다. 좌편향 교과서의 폐해 때문에 국가가 직접 주도해 교과서를 집필한다는게 떳떳하다면 정정당당하게 교육부 내 해당 부서에 조직과 인원을 보강해서 추진하는게 마땅했다. 대학로의 남모를 장소에 별동대를 조직해서 청와대와 비밀스럽게 보고를 주고 받는 일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부자연스럽다.

둘째, 정부와 청와대의 위증의혹이다. 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때가 지난 12일이고 나흘 전인 8일까지만해도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국정화 추진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공공연히 밝혔는데, 이미 뒤로는 국정화TF가 비밀리에 가동중이었던 셈이다. 이병기 실장이 국회에서 “청와대가 직접 지침을 내린 적은 없다”고 밝힌 것은 청와대 일일점검회의의 실체와는 상반되는 발언이다.

셋째, TF단장인 충북대 오석환 사무국장의 합류배경도 의문이다. 교육부 관료 출신인 오 단장은 인사발령이 아닌 장기 출장 형태로 태스크포스에 합류했다. 출장사유는 ‘교육개혁 추진점검회의 지원’ 명분. 어느 것 하나 투명하지 않고 비밀스런 냄새가 난다.

넷째, 국정화 TF 운영계획안에는 ‘교과서 집필진 구성과 지원계획 수립’이라는 항목이 등장한다. 이는 명백히 월권이다. 한국사 교과서 집필과 관리에 관한 업무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위임돼 있는데 교육부 태스크포스가 집필진 구성이라는 전문성과 객관성을 요하는 업무까지 진행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국정과제 중 하나가 ‘비정상의 정상화’다. 대한민국의 뿌리깊은 적폐를 해소해야 선진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세계 조류로 보면 변칙적일뿐더러 국내 여론도 부정적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런 사안에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몰두하는 이유를 많은 국민들은 궁금해한다. 여당 중진의원인 정두언 의원 조차도 “국정화 자체는 자유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던가.

리처드 닉슨 전 미국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됐기 때문이라기보다 백악관과의 관련성을 극구 부인했던 거짓말이 들통이 났기 때문이었다. 최고통치권자 조차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바로 신뢰라는 얘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실시에 대한 행정예고가 현재 진행중이다. 다음달 초면 확정고시될 예정이다. 정부가 국정화 실시 여부에 대해 막판까지 사실상 국민을 속인 것도 모자라 여론을 수렴해야 할 행정예고 기간에 제3의 장소에 별도의 조직을 가동하며 홍보대책 등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신뢰와 직결되는 일이다. 27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관심이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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