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영성 체험 ‘남도 순례’ 길을 가다 ① 유럽 성지순례 보다 전라남도

기독교인들이라면 누구나 이스라엘이나 터키, 그리스 등 성서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성지 순례를 가고 싶어 한다. 그 만큼 해외 성지순례 관광 상품도 다양하다. 그러나 국내에도 세계 교회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순교 현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기독교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성지 순례 전문 여행사 한국드림관광(회장 이정환 장로, 영은교회)이 지난해 남도 성지 순례(영광군-목포시-신안군) 코스를 개발했다. 이에 발맞춰 목포시를 중심으로 영광군과 신안군이 공동으로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지난 21일과 22일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남도 순례 길을 소개했다. 남도 순례 길에 나선 기독교인들은 믿음의 선배들의 수난 현장을 돌아보며 순교 영성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편집자 주>


◇ 6.25전쟁 상흔 간직한 전남 영광군 염산교회, 야월교회...총칼도 막지 못한 신앙 절개

4대 종교 성지가 한 곳에 모여 있는 전남 영광군.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백수 해안도로를 따라 염산면에 이르면 염산교회(임준석 담임목사)를 만난다. 염산교회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8월 허상 장로에 의해 설립됐다. 염산교회는 지하에 계량학교를 세워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섰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예배당 종을 빼앗기는 박해를 당하기도 했다.

사진은 염산교회 순교자 77인 순교 기념비(좌)와 순교자 32명이 합장 돼 있는 묘.

- 염산교회, 단일교회 최다 순교자 77인 배출...3개월 동안 피하지 않고 신앙 절개 지켜

일제의 박해를 이겨 낸 염산교회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130여 년의 국내 개신교 역사 속에 단일교회로는 최다인 77명의 순교자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사건은 1950년 6.25 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9월 28일을 기점으로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이후 전세가 역전되자 북한 인민군들이 영광에서 퇴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돼 10월 7일 국군환영대회를 주도했고, 미처 퇴각하지 못한 인민군들은 이 사실을 알고 보복행위에 나섰다.

인민군들은 환영대회를 주도한 기삼도 학생을 죽창으로 죽였고, 동료 3명을 새끼줄에 묶고 목에 돌멩이를 메달아 교회 옆 바다에 수장시켰다. 이후 같은 방식의 학살은 3달 동안 계속됐고, 김방호 담임목사 가족을 비롯한 77명의 교인들이 죽창으로 찔려 죽거나 목에 돌멩이를 매단 체 바다에 집단 수장됐다.

현재 염산교회 앞 마당에는 순교를 당한 교인들의 합장묘와 바다 수문 조절기계가 자리하고 있어 당시 순교를 증언해 주고 있다.

교인들은 이 돌멩이를 목에 걸고 교회 앞 바다에 던져졌다.

40여명의 성지순례 객들을 맞이한 염산교회 임준석 목사는 “인민군들이 굴비 엮듯이 교인들의 양손을 묶고 목에 돌을 메달아 수문 밑으로 던졌다”며, “증언에 의하면 교인들은 그 상황에서도 찬송을 부르며 죽음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이어 “77명이 동시에 순교를 당한 것이 아니라 3개월에 걸쳐 순교하였다는 것은 피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피하지 않고 신앙의 양심을 지켰다는 뜻이다”며, “염산교회의 순교의 역사는 영원히 한국 기독교 역사에 빛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염산교회 순교 이야기를 들으며, 교회 전시관을 돌아다본 순례객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염산교회에 두 번째 방문했다는 남도교회 유경상 장로는 “이 현장을 볼 때마다 흐트러진 신앙생활과 마음 자세를 다시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순교를 당한 이 분들처럼 세례요한처럼 나도 과연 순교할 수 있을까 반성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장 통합총회 여전도회 전국연합회장을 지낸 이숙자 장로(동광교회)는 “국내에 이렇게 참혹한 선교지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눈물이 났고 순교자들을 볼 때 내 신앙은 뭐였나 반성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남도 성지순례에 나선 기독교인들이 염산교회에서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다.

- 야월교회, 세계교회사 유례없는 전교인 65명 순교....“하루 한 가족씩 生매장”


염산교회에서 차량으로 5분가량 가다보면 야월교회가 나온다. 야월교회는 1908년 4월 유진 벨 선교사(Eugene Bell)에 의해 설립돼 일제강점기에도 교회를 중심으로 농촌계몽운동과 애국운동, 신앙교육을 실시했다. 하지만 전쟁의 비극만은 피하지 못했다.

전교인 65명이 1950년 9월과 10월 사이에 순교를 당했다. 북한 인민군 일부가 6.25 전쟁 발발 전인 6월 22일 이 지역에 상륙해 작전을 수행하려던 도중 야월교회 성도의 제보로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전쟁이 시작된 뒤 영광을 점령한 인민군들은 기독교인들은 미군의 앞잡이라고 생각하고 전교인 65명을 산채로 매장하거나 수장시켰다.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순교 사건이었다.

당시 9살로 교인들의 순교 모습을 목격했던 최종한 장로는 1980년에 야월교회 장로가 돼 야월교회 순교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최종한 장로는 “인민군들이 낮에 구덩이를 파놓고 해가 떨어지면 한 가족씩 새끼로 묶어서 생매장한 뒤 죽으면 바닷물에 던져버렸다”며, “가족이 몰살을 당했기 때문에 시체도 찾질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야월교회 기독교인 순교기념관 입구에는 “순교는 죽음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입니다”란 글귀가 순례 객들을 맞이한다.

- 전시관 내 ‘맞잡은 손’ 조형물...“순교 신앙은 용서와 화해 메시지 담아”

야월교회 예배당 옆에는 전교인 순교를 기념하는 야월교회 기독교인 순교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면 “순교는 죽음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입니다”라는 글귀가 순례객들을 맞이한다.

전시관은 호남선교의 역사를 비롯해 순교 영성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실과 한국교회 대표적인 순교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는 추모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전시관 1층 중앙부에 위치해 2층까지 솟아있는 조형물 ‘맞잡은 손’이다.

심재태 목사(야월교회 담임목사)는 “맞잡은 손의 한쪽 손은 상처 나고 찢겨진 손이고 한쪽 손은 거룩한 손이다. 상처 난 손은 순교자들의 아픔을 표현하고 거룩한 손은 하나님을 상징한다. 순교자들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치유되고 더 나아가 용서와 화해를 이루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순교 신앙의 정점은 용서와 화해라는 것이다. 분열과 갈등으로 좀처럼 연합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이다.

기독교인 순교기념관 내 조형물 ‘맞잡은 손’. 찢어진 손은 순교자의 손, 거룩한 손은 하나님을 상징한다.

◇ 1897년 목포 개항과 함께 설립된 양동교회..일제 강점기 애국계몽운동 주도 민족교회 역할

목포시에 가면 호남 선교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 양동교회(최병기 담임목사)는 야월교회와 마찬가지로 유진 벨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목포 최초 교회로 1897년 개항과 함께 시작됐다.

개항 당시에는 선교사들과 신도들이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지만, 이후 교인들이 유달산에서 직접 돌을 가지고 와 교회 건축을 시작해 1910년 석조 예배당 건물이 완성됐다. 양동교회 출입문에는 태극 문양과 함께 대한 융희 4년이라고 새겨져있는 데 순종 황제 재위 시절에 교회 건축이 완공됐다는 뜻이다. 양동교회는 이러한 이유로 역사성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근대문화 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최병기 목사는 “양동교회는 호남 최초 교회이자 민족교회였다”며, “일제강점기 교회 지하실에서 태극기를 등사하고, 교회 종을 울려 3.1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이어 “2017년이면 교회 설립 120년이 된다”며,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해 동남아시아 지역에 기념 교회를 설립하기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목포시에서는 이밖에도 유진 벨 선교사의 사택(현 정명여고)과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가 설립한 공생원,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가 신앙생활을 시작한 북교동성결교회의 초창기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호남 최초의 교회인 양동교회.

- 천사의 섬 신안군 증도..101개 교회 개척 문준경 전도사 순교 현장 체험 시설 구비

복음화율 90% 천사의 섬 증도에는 유명한 것들이 참 많다. 대표적인 것이 천일염과 짱둥어다리, 아름다운 일몰 그리고 문준경 전도사가 아닐까 싶다.

문준경 전도사는 증도의 밀알이었다. 1927년 36세의 나이에 목포시 북교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뒤 1934년 임자교회를 설립하고, 이후 59세 일기로 인민군에 의해 순교 당할 때까지 100여개의 교회를 세웠다.

문준경 전도사의 생애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이다. 기념관은 지난 2013년에 세워졌으며, 문 전도사가 1950년 10월 순교당한 곳인 당시 중동리 백사장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해있다.

최근에 많은 교회에서 가을 철 수양회 코스로 이 곳을 찾고 있다. 순교기념관에는 문 전도사가 개척한 교회들의 위치와 문 전도사가 신고 다녔던 고무신, 돋보기, 성경책 등 문 전도사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많다. 숙박을 하며 순교 영성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생활관과 대예배당도 갖춰놓고 있다.

전국의 많은 교회들이 가을철 수양회를 위해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을 찾고 있다. 사진은 강서구 화곡동 치유하는교회 교인들.

◇ 목포시, 영광군, 신안군 공동 ‘남도 성지순례’ 활성화 업무협약..“남도 성지순례의 메카로 만들 것”

박홍률 목포시장은 지난 21일 샹그리아비치호텔에서 남도 성지순례 관광상품 설명회를 개최하고, 기독교 성지순례 객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체류형 관광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목포시를 중심으로 영광군, 신안군이 업무협약을 통해 남도 성지순례 활성화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도 성지순례 코스를 개발한 한국드림관광 회장 이정환 장로는 “남도 성지순례길은 유럽의 여타 성지순례 코스보다 의미 면에서 훨씬 훌륭하다”며, “홍보를 잘해서 보다 많은 분들이 이 곳을 찾아 순교 영성을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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