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에 이라크전 사과한 英 전 총리의 속내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2003년 재임 당시 이라크전 참전 결정을 내렸던 것을 전격 사과하고 나서면서 영국 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블레어 전 총리는 25일(현지시간) 미국 CNN 인터뷰 방송에서 이라크 전쟁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만들어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또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받고 파병한 것은 실수였고, 이를 사과한다고도 말했다.

블레어 전 총리가 이라크전 참전 결정에 대해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블레어 전 총리는 서방의 이라크전 개입이 IS 세력화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늘 부정해왔다.

하지만 블레어 전 총리의 입장 발표에 영국 내 주요 언론들은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뒤늦은 사과인데다 진정성도 의심된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블레어 전 총리의 인터뷰 내용 중 '이라크전과 IS가 관련이 있다'는 발언만큼은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라크전 이전에만 해도 수니파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었으나, 서방의 개입을 계기로 결집하게 됐고 그 결과 2013년 중반 IS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수니파는 이라크전 당시 서방이 자신들의 교리 및 규칙을 침해했으며, 미국과 영국이 반대파인 시아파를 이라크로 끌어들여 종파간 유혈충돌 국면까지 벌어졌다고 본다. 이 같은 믿음이 전쟁으로 인해 생활 터전을 잃은 수니파 사이에 퍼졌고, 이후 거대한 테러조직이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가디언은 미군이 운영한 수용소도 IS를 탄생시킨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한 익명의 IS 사령관을 인용해, 아부 그라이브나 남부 부카수용소 등의 수용소 시스템이 오히려 IS를 가장 효과적으로 발생시킨 체계였다고 전했다. 이 사령관은 "바그다드 등 다른 지역이었다면 수니파 세력이 수용소에서처럼 한 곳에 모일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 곳에서 조직의 사상과 이론이 만들어졌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영국 언론들은 블레어 전 총리가 IS의 형성에 관한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파병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수 성향의 텔레그래프도 2003년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병사의 아버지 레그 키스와의 인터뷰를 실어, 블레어 전 총리가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키스는 블레어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해 "혐오감이 든다"면서 "무수한 인명피해 앞에서 이제서야 자신이 잘못했고 사과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또 블레어 전 총리가 "후세인을 제거한 것은 사과하기 어렵다"는 등 후세인 축출이 참전을 정당화한다는 듯 발언한 것도 비판했다. 애초 이라크전 참전의 명분은 대량 살상무기였지 후세인 축출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텔레그래프는 사설을 통해 "블레어 전 총리는 아직도 당시 자신이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보 성향의 인디펜던트는 2003년 이후 블레어 전 총리의 정신 상태가 마비된 것과 다름없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한편 내주에는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 경위를 조사한 칠콧 조사보고서 공개와 관련한 정이 나올 방침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블레어 전 총리의 때늦은 사과가 칠콧 조사보고서의 파장을 줄이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칠콧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2009년부터 영국의 참전 경위와 관련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으나 조사 결과 공개는 계속 지연돼왔다.

앞서 블레어 전 총리가 속해있는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 당수는 칠콧 보고서의 조속한 공개를 촉구하며, 블레어 전 총리가 전범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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