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에서 손호준은 아픔을 간직한 교사 남철웅 역을 맡았다. 그곳에 예능프로그램의 '착해 빠진' 손호준은 없었다. 대신 어딘지 모르게 무기력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자아내는 30대 남자가 있었을 뿐이다.
아직 손호준은 자신을 두고 배우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금 늦게 이름을 알렸을 뿐, 이미 크고 작은 경력을 쌓았음에도 좀처럼 겸손을 놓지 않는다.
인간관계, 특히 선배와의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신중하고 침착하다. 그런 의미에서 손호준은 요즘 사람들 답지 않게 참 예의바르고 배려심 깊은 청년이다.
착한 것도 매력이 될 수 있는 배우, 손호준과의 만남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영화 '비밀'이 개봉했다. 100%25 만족은 없겠지만 특별히 아쉬운 점이 있다면?
- 10년 전후로 변화를 주고 싶었던 아쉬움이 있다. 남철웅은 10년 전에는 결혼을 준비하는 평범하고 행복한 사람이었지만 큰 사건을 겪고 난 후에 죄책감에 시달리며 산다. 그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여건 상 힘들었다. 10년 전과 후를 번갈아 촬영해야 해서…. 그게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 철웅은 약혼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아가는 남자다. 실제로 영화가 진행되면서 감정층도 깊어지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 제가 철웅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나 상황을 스스로 납득하고 설득시키는 과정에서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성동일 선배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 노하우는 없고 그냥 믿음이다. 아역배우들은 '엄마가 아프고 널 보지 못한다'는 말만 들으면 눈물을 흘린다. 그 상황과 말을 믿어버리는 거다. 저도 많이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힘든 상황을 철저하게 믿어보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김유정과는 작품에서 처음 만났는데, 어떤 작업이었나?
- (김)유정이는 정말 예쁜 친구다. 나이는 열일곱이지만 연기 경력이나 이런 것으로 봤을 때는 절대 어린 친구가 아니다. 저도 함께 연기하면서 어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다. 저는 촬영할 때 그 순간 많이 집중을 하는 편인데 유정이는 조그만 감정도 계속 가져가는 친구더라. 그런 부분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 극 중에서 철웅은 밝고 활기찬 남자였다가 우울한 광기에 휩싸이는데 실제 자신과 닮은 지점이 있나?
- 어느 정도 닮은 모습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 같은 경우, 누구와 함께 있는지에 따라 항상 달라진다. 선배와 함께 있으면 어려워하고 말조심하는 편이고, 오래된 친구들과는 예의차리는 것 없이 서로 장난치고 더 떠든다. 동생들에게는 좀 더 형답게 다독여주고. 특히 선배님들에게는 기본적인 예의를 중요시 여기고 지키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면 선배님들에게도 항상 좋은 피드백이 돌아오는 것 같다. 내가 배려를 받고 싶기 때문에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성동일 선배님은 한 번도 선배님이라고 불러 본 적이 없고,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버지처럼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신다. (웃음)
- 정말 가장 추울 때였다. 그래도 저는 외투도 다 입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서)예지 씨가 고생을 많이 했다. 예지 씨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제가 해줄 수 있는 배려가 없을까 싶었다. 시선 맞춰주고, 같이 대사도 쳐주고 이러면 금방 금방 할 수 있다. 또 제가 선배님들보다 젊고 참을 수 있는데 (차에) 들어갈 수 있나 생각했다.
▶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 등 예능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했다. 배우로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생기는 이미지들이 걱정되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 그건 별개의 모습이라고 본다. '비밀'의 남철웅을 보면서 '삼시세끼' 손호준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 같다. 방송은 인간 손호준의 모습 그대로이고, 작품에서는 캐릭터에 맞게 표현해나가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 사실 많은 배우들이 고정된 이미지를 경계하기 때문에 예능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지 않는다.
- 저는 지금 배우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나중에 배우로서 욕심을 가지게 된다면 작품이나 연기로 발전해 나가는데 욕심을 갖는 게 맞다. 아직까지 그런 생각은 없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저는 분명히 얻는 게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많이 배웠고 도움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이 흥행해서 제작사 대표님, 고생한 감독님, 스태프 분들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저 혼자 찍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 같이 얻어가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각 인물별로 '순간의 선택'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혹시 인생에서 딱 한 번 있었던 순간의 선택이 있나?
- 저는 처음 연극을 접한 순간을 고르고 싶다. 제게도 분명 순간의 선택이 있었다. 교회에서 1년에 한 번 하는 연극제 행사가 있는데 주일학교 교사이셨던 아버지가 제가 참여하기를 바랐다. 한 번도 무대 위에서 연기해 본 적도 없고, 그런 상상이나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정말 창피해서 하기 싫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가지 않으면 용돈을 주지 않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올라갔다. 사실 질풍노도의 시기였으니까 용돈을 받지 않고 무대에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웃음) 연출하는 누나에게 잠깐 나오는 걸로 해달라고 졸라서 딱 대사 한 마디를 하게 됐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너무 웃긴 말이었던 거다. 관객들이 막 웃는데 무대 위에서 내려왔을 때 웃음소리가 자꾸 가슴에 울렸다. 이 느낌은 뭐지 싶었다. 또 올라가고 싶었고, 조금만 더 길게 해달라고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 후에 연극에 재미를 느끼게 됐다.
- 아버지는 전적으로 제가 하는 것을 많이 믿어주셨다. 지금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서울에 연극한다고 올라왔을 때 절대 말리시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시면서 무조건 믿어주셨다. 하지만 지원을 해주실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해 많이 미안해하시고 그랬다. 지금은 너무 좋아하신다.
▶ 항상 손호준하면 배우 유연석과 동방신기 유노윤호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 같다.
- 걔네 둘밖에 친구가 없다. (웃음) 정말로 만나는 게 그 두 사람이고 함께 있으면 편한 친구들이다. 이유없이 본다. (유노)윤호한테 전화하면 '어디야, 형? 나 집인데' 이런다. 그럼 제가 '알았어. 집으로 갈게' 이렇게 답한다. 왜 오냐고 윤호가 물어보지도 않는다. 제가 온 이유가 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윤호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냥 같이 있는 거다. 뭔가 얘기를 나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저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윤호는 컴퓨터를 하고 있다. 그러다가 '야, 우리 뭐할까' 이렇게 얘기하고….
▶ 참 각별한 사이인 것 같다. 유노윤호 씨가 군대에 갈 때도 울었다고.
- 아…. 그 날이 참 더운 날이었다. 그래서 땀을 닦은 건데 눈물을 닦는 것처럼 보여서 기사 제목에도 그렇게 나갔나보다. 어떤 사람은 '네 남자친구가 군대 가냐. 왜 우냐'고 놀리기도 했다. (웃음) 사람들이 다 오해를 하는데 어떻게 풀어줄 수도 없고 그냥 내버려뒀다.
▶ 아직 '배우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그럼 최종적으로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궁금하다.
- 아직 제 자신을 평가하는 건 조금 부끄러운 것 같다. 지금도 배워나가는 단계에 있고, 배우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하고, 조그만 역할을 계속해왔다. 제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제 자신에 대해 잘 안다. 많은 분들은 '응답하라 1994' 이후의 모습을 기억하신다. 그러나 그 분들이 저를 인정해주시기에는 아직 제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제 스스로 만족하고 평가하기 보다는 배우로 인정받고 난 다음에야 그런 생각도 해볼 것 같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시간이 지나서 많이 배우고 성장해나가면 그런 느낌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다른 작품으로 통해 공부하고 성장하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