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축복한 77세 거장의 순례담 "사랑을 구하고 싶다"

[백 투 더 BIFF ④] '영화로 연결되는 지구촌'서 돌파구 찾는 프랑스 영화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성인식이었다. 혹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성공적으로 자존심을 지켜냈다. 폐막식 이후 일주일 넘게 흐른 지금, 뜨거웠던 열기는 식었지만 과정이 어려웠던만큼 영화제의 족적은 더욱 뜻깊게 남았다. 파격적인 시작을 알린 제1회부터 아픔을 겪고 성숙해진 현재까지. CBS노컷뉴스는 이명희 영화 평론가와 함께 부산국제영화제를 되짚어보는 연속 보도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공든 탑이 무너지랴…스무 살 BIFF의 어제와 오늘
② 휴머니즘 외면 않은 용기…'난민문제'를 품다 <상>
② 휴머니즘 외면 않은 용기…'난민문제'를 품다 <하>
③ 빈부격차와 허세…스크린에 비친 뿌리 잃은 중국인의 파국
④ 부산 수놓은 77세 거장의 순례담 "사랑을 구하고 싶다"
(계속)

영화 '(신)남과 여' 스틸컷(사진=부산영화제 제공)
올해는 프랑스영화들이 대거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했다. 무려 75편이다. 물론 대다수 프랑스가 다른 나라와 합작한 영화다. 프랑스가 얼마나 국제교류와 합작을 중요시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산에서 상영된 터키영화 '무스탕'을 프랑스가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지정한 것을 보면, 영화계는 합작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한불 수교 130주년의 거대한 행사를 양국이 준비하면서, 부산영화제에는 '심씨의 사생활'(미셸 르끌레르끄 감독) 같은 프랑스 영화의 월드프리미어도 많았다. 한국 입양아 출신이라 더욱 관심이 집중된 플뢰르 펠르랭 문화부장관의 방문도 큰 이벤트였다.

프랑스 문화부장관은 부산영화제 기간 열린 '프랑스의 밤' 행사에서 거의 한 시간에 걸쳐 "한국영화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부산영화제 덕분"이라며 부산영화제의 높은 위상에 대해 발언했다. 프랑스영화의 홍보와 한불 영화 협력도 강조했다.

그는 영화 협력을 통해 다양성 영화가 소개되고, 문화의 획일화를 지양하는 정책 설명에 중점을 뒀는데,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진 연설은 프랑스장관이 얼마나 한불 상호교류에 관심을 두는지를 반증했다. 한국 감독으로서 프랑스에 특히 잘 알려져 있는 홍상수 감독에게는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여했다.

프랑스에서는 한국영화가 대거 소개될 예정인데, 파리 시립극장인 포럼 데지마쥬(Forum des Images)의 행사에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초청되어 참가할 예정이다.

한불 수교 130주년 상호교류의 해 행사의 일환으로 부산영화제에 편성된 '내가 사랑한 프랑스영화' 10편에는 끌로드 를루슈 감독의 명작 '남과 여'(1966) 가 있다. 끌로드 를루슈 감독은 이번에 프랑스 본국에서는 아직 소개도 되지 않은 '(신)남과 여'로 토론토에 이어 바로 부산을 찾았다.

갈라 섹션에 소개된 '(신)남과 여'는 77세의 노장이지만, 거의 50년에 걸쳐 변치 않은 감독의 힘을 보여줬다. 뛰어난 카메라맨이며 리포터 출신 감독답게,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한 진실의 관찰자로서 그의 시선은 더욱 깊어졌다.

짧은 시간의 영화만 찍을 수 있는 리포터용 소형 카메라와, 돈이 충분치 않았기에 흑백영상으로 찍을 수 밖에 없었던 '남과 여'는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가 돼 당시 전세계를 휩쓸었다. 거의 최초라 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를 영화에 삽입한 것도 신선했고, 동시에 프란시스 레이(프랑스 발음은 프랑시스 레)의 음악은 영화 주제가의 고전이 됐다.

프란시스 레이가 '남과 여'를 비롯해 를루슈 감독 영화들의 음악을 대부분 맡은데다 '(신)남과 여'의 주인공이 영화음악 작곡가인 까닭에, 이 새 영화가 혹시 그에게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을 남겼다. '남과 여'의 몇 장면을 본떴지만, 두 영화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음악에 관해 를루슈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대부분의 감독은 영화를 먼저 찍은 다음 음악을 만든다. 그러나 나는 음악을 먼저 만든 다음 영화를 만든다. 음악은 중요하다. 음악을 듣는 사람의 얼굴과 정치가의 연설을 듣는 사람의 말을 비교해 보라. 음악을 듣는 사람의 얼굴은 어디론가 가버린 얼굴이다. 음악은 신의 세계에 속한 것이다. 시나리오는 이성의 영역이지만, 음악은 무의식, 마음, 비합리성에 호소한다. 과학이나 지식과는 달리, 인간이 말할 수 없는 경지의 것을 음악이 다룬다."

◇ 흥미로운 다큐와 로맨틱한 극영화의 훌륭한 결합 '(신)남과 여'

영화 '(신)남과 여' 스틸컷(사진=부산영화제 제공)
사실처럼 보이게 찍는 것은 를루슈 감독 평생의 무기이다. 고전인 '남과 여'를 비롯해 사실을 보여 주려는 그의 특기는 다큐와 극영화를 결합시키면서 '(신)남과 여'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빼어나게 화려한 인도의 색채와 다양하고 진기한 사람들을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 영상 위로, 인도 바라나시를 거쳐 순례 여정길에서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신의 현현 혹은 신의 아바타인 '암마'(엄마라는 뜻으로, 마타 암리타난다마이를 일컫는다)의 종교는 사랑이다. 포옹으로 순례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암마의 품에 안기기 위한 여행길은 흥미로운 다큐멘터리와 로맨틱한 극영화를 훌륭하게 결합시켰다.

임신을 기원하는 프랑스 대사 부인 안나, 뇌 속의 치명적인 혈관꽈리 탓에 두통이 심한 영화음악가 앙뚜안느, 두 남녀의 사랑과 모든 것을 초월한 거대한 사랑인 암마의 사랑은 서로 다른 사랑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랑 이야기로 가득찬 영화는 벅찬 감동을 안기는 순간들을 선사한다. 유머와 재치가 가득하다. 즐겁고 행복하기도 하다.

를르슈 감독은 "유머가 없이 사랑은 불가능하다. 유머는 다른 사람의 결점을 용서하게 한다. 암마도 사랑과 유머를 동시에 지닌 존재"라고 말한다. "혹자는 지구를 구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사랑을 구하고 싶다"는 를루슈 감독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사랑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인생의 의미는 사랑이며, 모두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살고 있다. 사랑은 삶의 가장 큰 힘이다. 산을 옮기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며, 모든 것의 에너지이고 인류 발전의 연료다. 하지만 현대에 사랑은 위기이다. 점점 더 희귀해지고 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사랑 영화를 만든다. 모두에게 나 자신은 중요하다. 그러나 나보다 타인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 사랑이다."

'(신)남과 여'는 사랑 자체에 대한 찬가인 동시에 인도에 바치는 찬사이기도 하다. 인도에서 찍은 장 르누아르 감독의 '강'(1952)이 이 프랑스 거장의 인생관을 바꾼 것처럼, '(신)남과 여'도 를루슈 감독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인도에 가면 그대로 살아나오지 못한다. 사람 자체가 바뀐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 모두가 인생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라고 감독은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 필자에게 말했다.

"인도는 죽음이 없는 곳이다. 인간은 다시 태어날 거니까. 인도는 중세와 현대가 공존한다. 모든 고통과 불행, 부자와 극빈층이 공존하는 장소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며 역설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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