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의 기다림 끝에…"이제 만나러 갑니다"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조카 첫 만남 이병국씨 "눈물부터 나겠죠"

오는 24일 남북이산가족 2차 상봉에서 친오빠의 딸인 조카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경북 안동의 이병국(83)씨.
"한 많은 님들 가버린 님들! /보고 싶은 당신들, 만져보고 싶은 당신들, 말하고 싶은 당신들 / 오빠 당신들의 성명 3자 불러 볼 수가 없는 당신들 / 오늘 마음 놓고 불러봅니다."

이병국 할머니(83)는 6·25 전쟁 당시 북녘으로 떠난 피붙이 오빠들을 그리며 쓴 시를 읽어 내려갔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석 자가 가슴 속 응어리로 맺혀있다는 이 할머니는 그리운 오빠들의 이름을 하나씩 소리 내어 불렀다.

65년 전 친오빠 이병건씨와 민족시인이었던 사촌오빠 이병철씨는 고향인 경북 안동을 떠나 서울에 터를 잡았다. 당시 19살이던 이 할머니는 오빠들과 그 길로 영영 헤어지게 되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친오빠 이병건씨는 남쪽 고향에 아내와 백일도 채 안 된 핏덩이 딸을 남겨뒀다. 원해서 간 건지, 전쟁 난리 통에 끌려간 건지 알 수조차 없는 오빠들은 북으로 간 후 다시는 소식이 없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내 아들 어디가든지 무사하라'며 항상 정화수를 떠 놓고 빌고 그러다 돌아가셨어요. 나 역시도 '우리 오빠 어디 갔을까, 언제 올까' 그것만 기다렸는데…"

이 할머니는 그만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꿈에서나마 볼 수 있던 오빠들의 얼굴도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젠 기억 너머 저편으로 흐러져 갔다.

아흔이 넘어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이병건씨의 아내 김영목(96)씨는 8년 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병석에 누워만 있다.


"올케가 8년 째 식물인간처럼 숨만 붙어있어요. 누구를 기다리는 건지…올케가 기다림이 있는가 봅니다."

이 할머니는 올케가 남편인 자신의 오빠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친오빠와 사촌오빠 2명의 생사를 찾아 헤맨 지도 어느덧 65년이 흘렀고, 애타게 만남을 기다려 온 이 할머니에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북으로 간 가족들이 수십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러나 다행히도 친오빠의 딸 2명이 살아있다는 소식도 함께 찾아왔다.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있는지도 몰랐던 조카들을 만나게 된 이 할머니의 감회는 더욱 남다르다.

"보고 싶던 오빠들이 살아계셔서 만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돌아가셨다고 하니 서글프고 서럽지요. 그렇지만 오빠의 자식이고 혈육인 조카들을 꼭 한번 보고 싶네요."

아버지의 얼굴도 부정父情도 모른 채 살아온 딸 이원희(70) 씨도 이번 상봉에 동행한다. 70년 만에 북에 있는 배다른 형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이번 상봉 때 만나게 될 조카들에게 줄 선물로 이병국 할머니가 장만한 한복과 옷가지들.
조카들에게 줄 선물로 빛깔 고운 한복과 먹을거리를 손수 장만하며 만남을 준비한 이 할머니는 떨리는 마음에 며칠 째 밤잠을 뒤척였다.

할머니는 한 핏줄로 이어진 조카들의 얼굴을 단박에 알아볼 것만 같다.

"조카 얼굴을 보면 '우리 오빠를 닮았나, 우리를 닮았나' 보겠지요. 우리 오빠 이야기를 실컷 듣고 오고 싶어요."

조카를 보면 오빠를 보는 것 같아 그저 눈물부터 날 것 같다며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과 감격 속에 마무리 된 남북이산가족 1차 상봉에 이어 2차 상봉이 시작된다.

이병국 할머니를 포함한 남측 이산가족 255명은 속초에 집결한 뒤 오는 24일 금강산에서 생이별한 가족들과 뜨거운 혈육의 정을 나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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