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국 할머니(83)는 6·25 전쟁 당시 북녘으로 떠난 피붙이 오빠들을 그리며 쓴 시를 읽어 내려갔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석 자가 가슴 속 응어리로 맺혀있다는 이 할머니는 그리운 오빠들의 이름을 하나씩 소리 내어 불렀다.
65년 전 친오빠 이병건씨와 민족시인이었던 사촌오빠 이병철씨는 고향인 경북 안동을 떠나 서울에 터를 잡았다. 당시 19살이던 이 할머니는 오빠들과 그 길로 영영 헤어지게 되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친오빠 이병건씨는 남쪽 고향에 아내와 백일도 채 안 된 핏덩이 딸을 남겨뒀다. 원해서 간 건지, 전쟁 난리 통에 끌려간 건지 알 수조차 없는 오빠들은 북으로 간 후 다시는 소식이 없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내 아들 어디가든지 무사하라'며 항상 정화수를 떠 놓고 빌고 그러다 돌아가셨어요. 나 역시도 '우리 오빠 어디 갔을까, 언제 올까' 그것만 기다렸는데…"
이 할머니는 그만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꿈에서나마 볼 수 있던 오빠들의 얼굴도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젠 기억 너머 저편으로 흐러져 갔다.
아흔이 넘어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이병건씨의 아내 김영목(96)씨는 8년 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병석에 누워만 있다.
"올케가 8년 째 식물인간처럼 숨만 붙어있어요. 누구를 기다리는 건지…올케가 기다림이 있는가 봅니다."
이 할머니는 올케가 남편인 자신의 오빠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친오빠와 사촌오빠 2명의 생사를 찾아 헤맨 지도 어느덧 65년이 흘렀고, 애타게 만남을 기다려 온 이 할머니에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북으로 간 가족들이 수십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러나 다행히도 친오빠의 딸 2명이 살아있다는 소식도 함께 찾아왔다.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있는지도 몰랐던 조카들을 만나게 된 이 할머니의 감회는 더욱 남다르다.
"보고 싶던 오빠들이 살아계셔서 만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돌아가셨다고 하니 서글프고 서럽지요. 그렇지만 오빠의 자식이고 혈육인 조카들을 꼭 한번 보고 싶네요."
아버지의 얼굴도 부정父情도 모른 채 살아온 딸 이원희(70) 씨도 이번 상봉에 동행한다. 70년 만에 북에 있는 배다른 형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할머니는 한 핏줄로 이어진 조카들의 얼굴을 단박에 알아볼 것만 같다.
"조카 얼굴을 보면 '우리 오빠를 닮았나, 우리를 닮았나' 보겠지요. 우리 오빠 이야기를 실컷 듣고 오고 싶어요."
조카를 보면 오빠를 보는 것 같아 그저 눈물부터 날 것 같다며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과 감격 속에 마무리 된 남북이산가족 1차 상봉에 이어 2차 상봉이 시작된다.
이병국 할머니를 포함한 남측 이산가족 255명은 속초에 집결한 뒤 오는 24일 금강산에서 생이별한 가족들과 뜨거운 혈육의 정을 나누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