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나카타니 방위상, 한편으론 고마워요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왼쪽)이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양자회담을 시작 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윤성호 기자)
나카타니 겐 방위상님, 도쿄에는 잘 도착했는지요?

처음 보내는 편지이지만 길게 안부를 묻을 경황이 없음을 이해하십시오. 귀하가 다녀간 뒤 이곳 서울은 한일국방장관회담 후폭풍이 거셉니다.

아시다시피 국가 정책들이 대개 그렇지만 외교안보 분야는 비밀주의가 불가피한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 안위가 걸린 사안을 낱낱이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다만 여기에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할 것입니다. 국민이 주인인 한국 같은 민주국가에서 국민의 믿음을 배신하는 행위는 용서받기 힘들지요.

만약 그것이 국가의 토대인 영토와 이를 규정한 헌법에 관한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안일수록 일반 국민들이 알지 못하게 꽁꽁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20일 귀하와 한민구 국방장관과의 회담에서 문제가 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가능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귀하가 귀측 언론을 통해 속내를 밝히지 않았다면 우리 국민들은 정말로 정부 말만 믿고 까맣게 모를 뻔 했습니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마치 턱도 없다는 듯이 "우리 측 요청이나 동의 없이는 자위대 진출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귀하에게 한편으론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진=자료사진)
귀하는 일본이 한반도를 다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과 국제법상 북한은 우리 영토가 아닐 수도 있다는 냉엄한 현실까지 덤으로 일깨워줬습니다.

우리 정부는 잘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 척하거나, 어찌됐든 국민들에게는 잘 알려주지 않았던 문제들이죠.

썩 내키진 않지만 우리 국방부 흉을 좀 봐야겠습니다.

제가 봤을 때 이번에 가장 가관인 것은, 민감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해놓고 왜 약속을 깼느냐는 투로 귀측을 원망하는 태도였습니다.

아무리 일본에 '뒤통수'를 맞고 오락가락 해명에 정신이 없다고 해도 국민은 여전히 안중에 없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나카타니 방위상님, 그래서 말인데 기왕 공개한 것 좀 더 밝혀주면 안 될까요?

특히 궁금한 것은 귀하가 "한국의 주권 범위는 휴전선 남쪽" 취지의 발언을 했을 때 우리 측이 어떤 반응을 보였나 하는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한민구 장관이나 다른 누군가가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치면서라도 결연하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을 것으로 보는데, 솔직히 좀 자신이 없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찌했건 별 상관없는 일이겠지요. 중요한 건 앞으로인데, 일본은 야심을 분명히 드러냈고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유비무환의 자세를 갖추면 될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 가지 더 고마움을 전하겠습니다.

귀하의 발언은 우리에게 다시금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계기도 될 것 같습니다.

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교류가 끊기고 적대와 반목을 오래 하다보니 북한이 마치 버려둔 땅처럼 돼버린 것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더구나 일본은 한반도 분단의 근본 책임이 있는 나라 아닌가요? 그런 나라까지도 북한을 기웃거리는 지경이 됐다니... 아! 통탄하리만큼 우리 잘못이 큽니다.

나카타니 방위상님, 그런데 마침 남북 이산가족 만남이 이뤄지고 있는 중입니다.

구순을 앞둔 북쪽의 아버지가 두 살 때 헤어져 백발 할머니가 돼버린 남쪽의 딸과 60여년만에 만나 펑펑 울어버린 장면을 보면서 다시금 뼈저리게 통일을 간구하게 됩니다.

바쁘시겠지만, 그 아버지가 딸에게 유언처럼 불러준 노래 '애수의 소야곡'을 꼭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오마는”으로 시작되는 노래에서 패전국 일본을 대신해 속죄양이 돼야 했던 한민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CBS 정치부 홍제표 기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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