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증, 그들의 위대한 성취를 낳은 질병

<상상병 환자들> 9인의 창조적 삶을 통해 본 심기증의 역사

사진 제공=교보문고
현대인은 어딘가 아프다. 편두통, 관절 통증,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그러나 흔히 '스트레스성'이라는 수식이 붙는 각종 질병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그 증세도 다양해서 분명하게 진단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때로는 꾀병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런 증후를 '마음의 병'이나 '건강염려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의 기원이 바로 "심기증"이다.

<상상병 환자들>은 심기증을 겪은 9인의 정신이 육체와 더불어, 그리고 육체에 맞서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탐구하는 책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화가 앤디 워홀. 이들은 모두 심기증을 앓았다. 이 책은 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심기증이라는 질병이 초래되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심기증이 이들의 유년 시절· 가족 및 친구 관계· 성격· 행복과 불행· 사회생활·예술활동, 나아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그간 위인의 고통과 불안, 질병은 그들이 달성한 위업을 돋보이게 하는 부속물로 그려지곤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불세출의 인물과 맞먹는, 때로는 그를 압도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찰스 다윈은 심기증으로 인해 과학 연구에 더욱 몰두했으며, 살럿 브론테는 심기증의 경험을 <빌레트>의 여주인공에 오롯이 투영했다.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철저한 망상과 심기증의 고통 속에서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집필했다. 질병의 위력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투명한 정신을 건져 올린 그들의 재능이 여전히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위대한 성취가 오히려 그들의 고통과 질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런 관점의 역전, 관계의 역전 때문에 이 책은 더욱 특별하다.

이 책은 '약초 연기 자욱한 컴컴한 방의 천식 환자, 마르셀 프루스트' '손가락을 다칠까 봐 악수를 거부한 강박증 환자, 글렌 굴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린 딸기코 청년, 앤디 워홀' 등의 장으로 구성됐다.

때때로 자신을 괴롭히는 증상이 과연 진짜인지 상상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병원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9인의 이야기는 커다란 위안과 용기를 줄 것이다.

브라이언 딜런 지음/ 이문희 옮김/작가정신/380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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