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갈등을 정면으로 다룬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둔 송곳은 지난해 상업영화로는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다뤄 화제가 된 '카트'와 자연스레 겹친다. 비슷한 시기 TV에서 방영된,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려 신드롬을 낳은 드라마 '미생'과도 맞닿아 있다.
'일자리는 곧 생존'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듯이, 노동문제가 스크린에서 브라운관으로까지 번진 모습이다.
작가 최규석의 웹툰 송곳은 한국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갑'의 횡포와 '을'의 애환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많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 부당해고, 노사갈등과 관련한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꼭 필요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특징도 지녔다.
웹툰의 뚜렷한 색깔을 드라마가 제대로 구현해낼지가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른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드라마 송곳의 주요 배경은 대형마트인 푸르미마트다. 이곳은 철저한 위계질서 아래 돌아가는 공간이다.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는 관리자들이 있고, 그 밑으로 생활용품·규격상품·수산·야채청과 등의 파트 직원들이 배치돼 있다.
극을 이끌어가는 양대 기둥은 푸르미마트 야채청과 과장 이수인(지현우)과 부진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안내상)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수인이 회사의 부당해고에 대항하기 위해 구고신의 노동상담소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 "분명히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구고신은 이수인과 신뢰·연민으로 맺어진 강력한 조력자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비겁하고 무력해 보이는 껍데기를 자꾸 흔들고 압박하면 분명히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등 그가 던지는 촌철살인의 언변은 드라마의 뚜렷한 메시지를 대변한다.
생존권 쟁취를 위해 뭉친 두 사람의 호흡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에서 의미가 퇴색해 가는 '같이의 가치', 곧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힘이다.
이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주요 인물이 이수인의 상사인 정민철 부장(김희원)이다. 그는 이수인을 시기하는 악덕 부장으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캐릭터다. 가장 큰 사건과 마찰을 일으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미운 행동만을 골라서 하는, 우리 주변에 한 명쯤은 꼭 있을 법한 사람이자 상사"라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12부작으로 기획된 송곳은 반 사전제작 드라마로 이미 3개월 전부터 찍기 시작해 상당부분 촬영을 마쳤다. 마지막 대본까지 탈고된 상태다. 현장에서 쪽대본을 받아들고 시간에 쫓기듯 연기해야 하는 전형적인 드라마 제작 환경과 달리, 배우들이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있으니 꼼꼼한 연기를 펼칠 수 있었으리라.
이는 드라마 송곳이 한국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원작의 날카로움을 이어받는 데 든든한 역할을 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송곳의 연출을 맡은 김석윤 PD는 지난 21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원작의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꼭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며 "제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기 보다는 안팎으로 작품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보내는 우려의 시선이 더 부담됐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누구나 봐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먹고 사는 것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없다는 논지로 설득했다"며 "주변에서 '괜찮겠어"라고 묻곤 했는데, 설득의 대상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송곳이 방송을 타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을 느꼈다. 이 작품에 대한 시선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