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기획] 하인리히 불링거, 교회 일치와 사회 개혁 주창

[앵커]

종교개혁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루터와 깔뱅이죠.

498주년 종교개혁주간을 맞아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종교개혁자들을 기획기사로 조명해봅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지역 교회의 울타리를 뛰어 넘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 구현에 힘쓴 하인리히 불링거를 살펴봅니다.

이사라 기잡니다.

[기자]

스위스 취리히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종교개혁의 선구자 쯔빙글리.

그의 뒤를 이은 2세대 종교개혁자가 하인리히 불링겁니다.

1531년 27살의 나이로 취리히 시 대표 목사가 된 불링거는 7만 여명의 인구를 가진 취리히 도시 국가에서 130여명 목사들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쯔빙글리가 미완으로 남겨둔 종교 개혁의 과제를 제도적으로 발전 시키고 취리히교회를 유럽 개신교에서 영향력 있는 교회로 세워갑니다.


[인터뷰] 김상윤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이 분이 그 안에서 쯔리히 안에서만 개혁교회를 펼쳐나갔던 것이 아니라 스위스 전역과 유럽 전역에 있어서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서로 종교 개혁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감당했다는 점에 있어서..."

16세기 종교개혁의 주요한 신학 조언자이며 지도자였던 불링거.

그는 그의 저술 <50편의 신학적 설교> 등을 통해 개혁교회 목회자들의 신앙적 교양을 형성하는데 기여했습니다.

또 깔뱅 등 스위스와 전 유럽의 목회자, 정치가 1000여 명과 12,000통의 서신을 교환하며 그들의 종교개혁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즉, 불링거는 종교개혁에 있어서 교회 일치와 연합 정신을 중요시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가 작성한 <제2스위스 신앙고백>은 당시 16세기와 17세기 스위스와 유럽 전역에서 공동의 신앙 고백으로 지지를 받고 오늘날에도 개혁교회의 중요한 신앙고백서로 평가 받습니다.

불링거 종교개혁의 또 하나의 특징은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을 동시에 추구한 쯔빙글리를 계승해 교회와 시민 사회를 하나의 기독교 공동체, 즉 하나님 나라로 간주한 겁니다.

[인터뷰] 김상윤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쯔리히 시 전체가 한 공동체성을 가진 하나의 집단을 유지될 수 있도록 설교를 통해서나 정치인들을 끊임없이 격려하거나 촉구하는 일을 통해서 근대적인 의미인 복지 제도를 아주 원시적인 단계에서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링거는 빈민 문제, 고리 대금업 문제 등 당시 사회의 주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며 교회개혁이 교회 안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도록 힘썼습니다.

교회의 유익뿐만 아니라 사회의 유익과 안녕을 도모하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실천했던 불링거의 종교 개혁, 오늘날 한국교회가 되새겨야 할 모습입니다.

CBS 뉴스 이사라입니다.

[영상 취재 이정우 영상 편집 이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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