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마련을 포기한 20, 30대 '오포세대'를 위로하는 단비가 될 수 있을까.
취업만 하면 인생 제대로 즐기리라 생각한, 한 스포츠지 연예부 햇병아리 수습기자 도라희(박보영). 그녀는 첫 출근 날 몸에 딱 맞는 정장에 멋진 하이힐을 신은 완벽한 커리어우먼 복장으로 나갔다가 3분 만에 모든 환상에서 벗어난다.
"지금은 니 생각, 니 주장, 니 느낌 다 필요 없어!"
도라희의 눈 앞에 펼쳐진 살벌한 풍경의 가운데에는 터지기 일보 직전의 부장 하재관(정재영)이 있다. 첫 출근 날 따뜻한 인사말 대신 차진 욕이 오간다. 손대는 일마다 사고를 치는 도라희는 하재관의 집중 타겟이 된다. 전쟁터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청춘 도라희의 분투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21일 서울 신사동에 있는 CGV압구정에서 열린 이 영화의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정기훈 감독은 '열정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지금 젊은 세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며 "올바른 열정을 요구하고 그것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지금은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열정에 대한 정 감독의 생각은 곧 이 영화의 핵심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코미디라는 장르를 표방한 이 영화가 지난 몇 년간 맥을 못 추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청춘영화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품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스크린에 구현해낸 인물이 20대 대표 여배우로 꼽히는 박보영이다. 그가 연기한 도라희는 학점, 어학점수 등 모자란 게 없지만, 취업의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진다. 도라희는 어렵사리 연예부 수습기자로 입사하지만, 점심 대신 상사의 욕을 먹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 사표를 꺼내드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이날 제작보고회에 함께한 박보영은 "또래를 연기하면서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매일 혼나고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3개월 남짓 촬영을 하면서 하루하루 직장인의 생활을 경험했는데, '직장인들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연기한 도라희는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20대로 제 또래여서 더욱 몰입이 됐다"며 "현재 사회 분위기에서 우리 세대에게 열정은 안 좋은 뜻이 됐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런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 "사무실서 벌어지는 직장인들 애환 담으려 애써"
전작 '애자' '반창꼬' 등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정기훈 감독은 "원작 소설을 접하고 든 생각은 직장생활의 애환을 담고 싶다는 점이었다"며 "현장 중심으로 흘러가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70%를 차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박보영과 함께 극의 큰 기둥으로 서 있게 된 배우가 정재영이다.
정재영이 연기한 하재관 캐릭터는 회사를 내 집 같이 여기며 365일을 상주하는, 일의 능률을 위해서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마디 욕이 낫다는 신념을 지닌 상사다.
제작보고회에서 정재영은 "시나리오가 재밌어서 선택했는데, 현실적인 설정 덕에 저뿐 아니라 다른 직책에 있는 역할에도 자연스레 공감이 갔다"며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 등 일에 찌든 직장인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다"고 전했다.
정 감독은 "원작 소설을 읽고 제일 먼저 떠오른 배우가 정재영과 박보영이었는데, 처음 구상했던 배우들과 함께하게 돼 기뻤다"며 "극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3~6개월 동안 취재를 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로 준비했고 열심히 만들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