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폭 휴대전화에 우연히 발견된 파일로 수사 시작…거미줄처럼 퍼진 '정킷방'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심재철 부장검사)가 해외원정 도박 수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6월.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씨 양아들의 범죄 행위를 수사하다 조폭들의 휴대전화에 도박빚을 독촉하는 메시지와 녹음파일들이 발견된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지만 고구마 줄기처럼 수사가 뻗어나가고 있다.
검찰은 마카오,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 호텔 카지노에서 VVIP룸, 이른바 '정킷(junket)방'을 운영한 업자들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정킷방에서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며, 판돈이 최고 6~7억원에 달해 도박을 즐기는 중견 기업인이나 유명인들이 은밀하게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강원도나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도박을 하면 신원이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기업인들이 꺼린다"며 "판돈이 크고 비밀이 보장되는 정킷방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입건된 사람은 무려 26명에 이른다. 이들 중 이미 구속되거나 구속영장이 청구된 간부급 조폭들이 9명, '롤링업자'로 불리는 카지노 브로커들이 2명이다.
정킷방 운영 실태를 보면 호남을 기반으로 한 '범서방파'에서 뻗어나온 조직폭력배의 지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 마카오 동남아 카지노, 호남지역 조폭들 각축장 된 사연?
화장품 업계의 마이다스 손으로 불리는 정운호(50) 네이처리퍼블릭 회장과 중견 해운업체 대표 문모(56) 씨, 경기도 광주 유명 골프장을 운영하는 맹모(87) 회장도 이곳을 드나들었다.
삼성라이온스 소속 야구선수들도 마카오 원정도박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의 수사를 받고 있다.
마카오보다 단속이 덜한 동남아 지역에서도 조폭들이 하나둘 세력을 확장했다. 공짜 관광을 시켜주겠다며 손님을 유인했다.
필리핀은 청주 파라다이스파와 학동파가 장악하고 있으며, 캄보디아는 영산포파, 영등포중앙파가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롭게 뜨는 베트남 지역은 전남 영광파와 함께 조폭이 아닌 일반인도 진출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특히, 호남에 기반을 둔 '범사방파'가 유독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호남 조폭들은 지역 경제 기반이 열악해 일찌감치 서울로 진출한데 이어 해외로 뻗어가며 세를 키우는 것으로 검찰은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와 연계한 도박, 마약 사업 뿐 아니라 불법 기업인수합병(M&A)의 방식으로 수백~수천억원대 금융 범죄를 저지르는 등 갈수록 기업화되며 진화하고 있다.
부산 칠성파, 대구 동성로파처럼 영남 지역 조폭들이 아직까지 지역 유흥업소 운영에 기반을 둔 것과는 대조적이다.
◇ 공짜 관광으로 유인했다가 빚 못갚으면 '조폭'으로 돌변
조폭들은 판돈에서 수수료 1.25%를 따로 챙겨받거나, 도박자금을 반반씩 제공하는 방식으로 카지노와 개별 계약을 맺었다. 캄보디아, 베트남 등에서는 직접 카지노를 설립하거나 인수하면서 세를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외화로 한 도박자금을 원화로 돌려받아 환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손님을 유치해올 때는 항공권, 숙박, 관광 등 '풀서비스'를 제공하며 정킷방으로 끌어들였지만 빌려준 돈을 회수할 때에는 조폭 본색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낮에 국내 골프장에서 구타를 당하고, 몇몇 중소기업 사장들은 도박빚으로 파산해 회사를 팔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기소된 폐기물처리업체 사주 오모(54) 씨도 캄보디아로 공짜 여행을 시켜준다는 말에 이끌려 카지노에서 60억원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못하자 조폭들에게 협박을 당했다.
조폭들은 "당신 인생이 종 치게 실력행사를 하겠다. 회사와 집으로 찾아가 망신을 주겠다"고 협박했고 돈을 따서 갚으라며 다시 원정도박을 떠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알음알음 퍼진 해외 원정도박이 국내 조폭들의 새로운 자금원이 되고 있다"며 "일부 기업인들이 횡령한 금액을 도박 자금으로 탕진하는 등 경제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