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주도층 토론 '박정희 100주년 좋은데 이건 아냐…'

고등학교 한국사 8종 검인정 교과서. 금성출판사, 두산동아, 미래엔, 비상교육, 천재교육, 리베르스쿨, 지학사, 교학사. (사진=홍성일 기자/자료사진)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1년 만에 뚝딱 해치워 2017년에 새로 낸다고요. 무슨 이유인가요?”. “그건 2017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신 100주년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지난 주말에 만난 전직 차관 출신과 중견 언론인 간의 대화다.

요즘 세간에는 오피니언 리더들(여론 주도층)의 주요 관심사가 국정교과서 파문이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것 같다.

지난 주말과 주일에 만난 10명가량의 50~60대들은 한결같이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입장이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토론이 붙였다.


전 고검장 출신의 변호사는 “나도 박정희 시대에 대학에 다녔고, 검사가 돼 내 스스로도 보수적인 성향이라고 보고 있는데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사를 제대로 공부를 했는지 모르겠다. 검정을 강화하면 될 일을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기업 임원(60대)은 “평생을 정치권과 깊은 연을 맺고 살고 있는 내가 볼 때도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 같다. 이건 여·야의 대결에서, 당청관계에서 박 대통령이 우위에 서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도 대통령에게 끌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와대가 정치적 목적 때문에 교과서 국정화 의제를 던졌고, 이슈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 중견 언론인(50대 초반)은 “역사 교과서가 일부 사실을 제대로 적시하지 않고 치우친 것은 사실이다. 고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렇게 일사천리로 해치우듯이 끌고 가는 것은 아니다. 진보 진영도 잘못했다. 몇 년 전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가 터졌을 때 전교조 선생님들이 교학사를 찾아가 난리를 쳤다. 그 때 그런 교과서를 그대로 놔뒀어야 국정화 반대 논리가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교과서 국정화로 보답하려는 뜻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회자된다.”

한 정치인(50대.새누리당)은 “교과서 국정화로 나라가 둘로 확연히 갈리는 듯하다. 보수층과 진보 진영 간 틈새가 더 벌어지는 것 같아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다.”

모 대학 총장(60대)은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중도 역사학자인 교수에게 물어봤더니 일부 역사 교과서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전제 하에 손볼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 그렇더라도 국정화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자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자는 처사라며 검인정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답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또 “어떤 역사학자들과 선생님들이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할지 우려된다. 자칫 교수나 선생님들까지도 둘로 쪼개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직 차관(60대)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가지라도 제대로 처리한 뒤 역사 교과서 문제를 들고 나왔으면 좋겠다. 봐라, 공무원연금 개혁도 대충 얼버무려 끝냈고, 노동개혁도 앞날이 안개속이다. 교과서 국정화에 걸려 어떤 개혁 정책도 추진되지 못할 것 같다. 나라를 생각하면 답답하다.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아이들이 얼마나 달라지냐? 우리의 40~50대들을 봐라. 국정교과서로 배운 그들은 가장 진보적이었고 사회 변혁 운동에 몰입했었잖아.”라고...

모 대학병원 의사(50대)는 “사실 관심이 없었는데 친구들을 만나니 교과서 문제를 많이 얘기하더라. 일부 친구들은 제발 대한민국을, 사회를 분열시키지 말고 통합하는 길로 끌고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더라”고 했다.

한 기업인(50대)은 “우리 중·고등학교 때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다. 북한이 남침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역사를 배웠고, 세뇌됐다. 그러던 우리가 대학에 들어가서 완전히 잘못 배웠음을 알았다.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베트남 전쟁이 얼마나 처참했고 파괴적이었는지 알았듯이. 그런데 우리 조카·아들·딸들에게 또 일방적인 역사를 가르치겠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대한민국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할 뿐인데 경제를 살리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무슨 이념 투쟁, 역사 전쟁이냐”며 “제발 정신차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하소연 했다.

정치 평론가(50대)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보수층의 아이콘이 되려는 듯이 연일 역사학자들을 좌파로 매도하고,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부친 친일·독재 미화 시도라며 맞선다”면서 “이건 정치가 아니라 적대적 공생관계로 나라를 두동강나게 하는 꼴”이라고 한탄했다.

이들 10명이 전체 여론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오피니언 리더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파급력과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특히 이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적 양심을 가진 시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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