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부산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부산 케이티와의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추일승 고양 오리온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추일승 감독은 "우리는 공격을 위해 수비를 하는 팀"이라고 답했다.
오리온은 2015-2016 KCC 프로농구 초반을 지배하고 있다. 11승1패로 압도적인 리그 선두다.
무엇보다 화력이 대단하다. 12경기를 치르는 동안 70점대 득점을 올린 경기가 한 차례 밖에 없다. 50-60점대? 없다. 11경기에서 80점대 이상의 득점을 올렸고 100득점도 한 차례 기록했다.
추일승 감독에 따르면 오리온은 공격을 위해 수비를 하는 팀이다. 먼저 오리온이 올 시즌 얼마나 폭발적인 공격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공격 기회당 득점 : 압도적인 리그 1위
오리온은 팀 평균 득점 부문에서 리그 1위에 올라있다.
▲2015-2016시즌 팀 평균 득점 순위 (10월19일 기준)
1. 고양 오리온 - 86.3점
2. 울산 모비스 - 80.4점
3. 안양 KGC인삼공사 - 79.1점
4. 부산 케이티 - 78.9점
5. 창원 LG - 77.1점
6. 서울 삼성 - 76.5점
7. 원주 동부 - 76.4점
8. 전주 KCC - 76.1점
9. 인천 전자랜드 - 74.4점
10. 서울 SK - 73.7점
농구에는 '포제션(possession)' 개념이 있다. 다소 복잡한 계산을 거치면 팀별로 한 경기에 얼마나 많은 공격권을 갖는지, 평균 공격 기회를 구할 수 있다.
'포제션'을 알면 공격의 순도를 따져볼 수 있다.
평균 득점 기록에는 함정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김승현과 김병철, 전희철, 마르커스 힉스가 함께 뛰었던 과거 대구 동양 오리온스가 90점 경기를 했고 KBL 역대 최고의 수비력을 자랑했던 2011-2012시즌 '동부산성' 원주 동부 역시 90점 경기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동양 오리온스는 왠지 평소대로 경기를 한 것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매직핸드' 김승현을 중심으로 속공이 많고 '얼리오펜스(early offense)' 시도 역시 많은 팀이다. 공격력에 자신이 있고 능력도 받쳐주기 때문에 경기 템포를 끌어올려 시도를 많이 하는 팀이다(실제로 2001-2002시즌 오리온스의 평균 득점은 87.5점이다).
반대로 동부는 슛을 던질 때마다 다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줄 것이다. 당시 동부의 평균 득점은 75.9점이다. 실점은 67.9점에 불과했다. 동부는 공수전환의 템포를 지연시키는 농구, 관계자들이 흔히 말하는 '5대5 농구'를 추구하는 팀이었다.
이처럼 팀별로 스타일이 다 다르고 팀별로 가져가는 공격권의 횟수가 다 다르기 때문에 평균 득점 만으로는 공격의 순도를 따져보기 어렵다. 그래서 '포제션'의 개념을 더해 공격권당 득점을 따지면 팀별 공격력의 순도를 따져볼 수 있다.
▲2015-2016시즌 팀 공격권당 평균 득점 상위 5개 팀 순위 (19일 기준)
1. 고양 오리온 - 1.220점
2. 울산 모비스 - 1.157점
3. 부산 케이티 - 1.111점
4. 서울 삼성 - 1.105점
5. 창원 LG - 1.107점
오리온이 단연 압도적이다. 이 기록은 오리온이 1번의 공격을 펼칠 때마다 평균 1.220점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위에서 언급한 2001-2002시즌의 동양 오리온스, 공격 농구의 상징과도 같았던 팀과 비교해보면 이 숫자의 의미는 더욱 놀라워진다. 당시 동양 오리온스의 공격권당 득점은 1.150점이었다.
(심지어 올 시즌 모비스 역시 과거 오리온스보다 효율적인 공격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모비스가 공격 농구를 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그만큼 모비스의 세트오펜스는 성공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그럴만 하다. 오리온은 올 시즌 2점슛 성공률(56.9%)과 3점슛 성공률(39.4%) 부문에서 리그 1위다. 특히 3점슛 성공률을 주목해야 한다. 리그 2위는 원주 동부로 36.7%, 리그 평균은 31.7%에 불과하다. 여기서 차이가 발생한다.
지난 시즌 초반 오리온이 개막 8연승을 달릴 때 '3점슛에 의존하는 팀'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3점슛만 막으면 해볼만 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올 시즌은 다르다. 3점슛의 성공률은 높지만 3점슛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팀별 3점슛 시도 횟수를 따져보면 오리온은 평균 18.2개로 리그 8위에 불과하다.
오리온은 무엇보다 공격의 밸런스가 좋다. 애런 헤인즈는 끊임없이 페인트존을 공략한다. 외곽에는 문태종, 허일영, 전정규 등 슈터들이 즐비하다. 김동욱은 내외곽을 오가며 공격의 밸런스를 잡아준다. 모두가 이타적인 플레이를 추구한다. 볼이 원활하게 돈다.
내외곽 밸런스가 좋다는 것은 선수가 편하게 슛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그만큼 확률도 높아진다는 뜻이다. 올 시즌 3점슛 성공률 부문 1위는 김동욱이다. 28개를 던져 13개를 성공시키며 46.4%의 적중률을 보였다.
(애런 헤인즈는 "올 시즌 3점슛 성공률 1위는 누구일 것 같아?"는 통역의 질문을 받고 무려 15번의 시도 끝에 정답을 맞혔다고 한다)
◇"공격을 위해 수비를 하는 팀"
오리온은 화끈한 공격력을 앞세워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면 수비력은? 리그 중간 정도다. 평균 실점 부문에서 리그 5위(77.6점), 상대의 공격권당 실점을 따져봐도 리그 5위(1.10점)다.
추일승 감독은 "우리는 공격을 위해 수비를 하는 팀"이라며 "수비가 잘 돼야 공격에도 무리가 없다. 수비가 안되면 선수들의 공격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것을 빨리 만회하려고 무리하게 공격을 펼친다"고 말했다.
올 시즌 오리온의 농구는 신선하다. 압도적인 수비 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선두 질주를 하고 있다. 지난 5시즌을 돌아보면 수비력 부문에서 리그 1~3위 권에 올라있는 팀들이 정규리그를 제패했다. 현재까지 오리온은 그 기준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공격과 수비는 계산으로 따질 때에는 완전히 분리된 카테고리 같지만 코트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공격의 끝에 수비가 있고 수비가 마무리돼야 공격이 시작된다. 오리온은 속공에 강하고(평균 4.0개, 리그 3위), 기록지에는 나타나지 않은 '얼리오펜스'에도 능한 팀이다. 수비가 잘 돼야 속공은 물론이고 상대 수비가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득점을 노리는 '얼리오펜스'의 파괴력이 증가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리온은 그 접점을 원활하게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 당연한 얘기를 현실로 보여주고 있다.
팬들은 오리온의 화끈한 농구에 열광한다. 그러나 추일승 감독을 비롯한 오리온 내부에서는 늘 수비 걱정을 한다. 그래야 팀의 장점이 극대화된다고 믿는다.
매직 존슨은 자서전 '매직 터치'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농구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디펜스, 디펜스 그리고 디펜스"라고.
미국프로농구(NBA) 역사상 아마도 가장 화려하고 공격적이었던 팀, 1980년대 '쇼타임' LA 레이커스의 리더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다섯 번이나 NBA 시즌을 제패한 선수의 말이다. 농구란 종목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