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박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을 마치고 가진 질의응답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3년 만에 한국이 주선해서 11월초에 열릴 예정”이라며 “일본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그 기회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그 회담이 열리게 됐을 때 그것이 양국 간에 미래지향적으로 그것을 계기로 해서 변화 발전해 나가야 의미 있는 회담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한도 풀어드리고, 우리 국민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이 문제도 어떤 진전이 있게 된다면 의미 있는 정상회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양국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미래지향적 발전 방향을 깊이 논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사실상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통한 한일관계 정상화 의사를 뚜렷하게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박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해 나름의 조건을 달기는 했다.
그 조건으로는 회담을 계기로 “양국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미래지향적 발전 방향을 깊이 논의”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위안부 피해자 등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선결조건을 내세웠던 기존 입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일단 정상회담을 열어 대타결을 시도하되 합의에 실패하더라도 과거사와 안보·경제의 투트랙 전략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회담 전까지 남은 2주 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전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긍정적인 징후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양국은 최근까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9차례의 외교부 국장급 협의를 가졌지만 입장 차는 여전히 팽팽한 상태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 협의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considerable progress)이 있고 협상이 마지막 단계(final stage)에 와있다”고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미국 방문 중에 한일 정상회담을 직접화법으로 거론했다.
이는 미국 조야에 퍼져있는 ‘중국 경사론’을 불식하고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하는 것을 넘어 미국이 요구하는 한미일 3각 군사동맹에 한 발짝 더 다가섬을 의미한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실상은 중국 포위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고, 과거사 반성 없이 군사 대국화로 치닫는 일본을 사실상 묵인하는 결과가 된다.
박 대통령이 초지일관해온 대일 외교의 원칙론을 스스로 허물고, 지난달 중국 전승절 참석을 통해 거둔 ‘균형 외교’의 성과에도 생채기를 낸 셈이다.
박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상징성이 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올해가 두 달여밖에 남지 않은데다 한중일 정상회담이라는 계기를 놓칠 수 없다는 고육책이다.
하지만 아베 일본 정부의 태도는 거의 바뀌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만 헛심을 쓰다 제풀에 지친 격이 됐다는 점에서 전략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