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는 이 감독이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사극 영화다. 개봉 전,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그는 언뜻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면서 그것이 자신감보다는 모두 내려놓은 자의 여유라는 것을 알았다.
이준익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조금 특별하다. 그는 영화 '왕의 남자'로 천만 감독의 반열에 올랐지만 결코 안주하지 않았다. 코미디로, 공포로, 범죄 드라마로 도전은 계속됐다. 잘됐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천만'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은 그를 우리는 어떤 영화도, 장르도 아닌 '이준익 감독'으로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이준익 감독은 숨길 줄을 모른다. 자신이 가진 패를 다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노력하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인터뷰에서도 그 특유의 기질은 아낌없이 발휘됐다. 다음은 이준익 감독과 기자가 나눈 일문일답.
▶ 이런 묵직한 정통 사극은 오랜만이다. 익숙해서 더 쉽지 않은 사도세자 이야기를 다룰 수 있었던 노하우가 궁금하다.
-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할 소재였다. 가능하다면 사실에 입각해 최대한 픽션을 자제하려고 했다. 이 영화는 만족과 불만족의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결례일 수 있다. 어쨌든 조선 시대 역사 상 가장 비극으로 손꼽히는 사건이 아닌가. 이런 사건을 놓고 영화를 만들 때는 태도의 공손함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나를 위해 찍은 영화가 아니라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관객과 정중하게 만나려는 자세가 깃든 영화다.
▶ 배우 송강호와 유아인. 이들과 작업하는 무게감도 남달랐을 것 같다.
- 영화 시사회를 마치고 친한 기자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름 좋게 이야기해주더라. 대체적으로 호감을 보여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숨이 탁 놓였다. 사실 뻔한 이야기를 걸출한 두 배우가 연기해서 평가가 좋지 않으면 감독 입장에서는 살 떨린다.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여기서 잘못되면 인생 끝난다는 생각도 하는 거지. (웃음) 대충 넘어가면 안될까 하는 비겁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차피 끝난 건데 매를 맞아도 왕창 맞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 영화의 절정은 뒤주 안에 갇힌 사도세자가 죽어가는 순간 영조와 나누는 대화다. 아무것도 없이 말만 몇 마디 하고 끝나는 거다. 그것을 절제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진심의 소통만이 이야기가 도달해야 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뒤틀린 심리와 울분과 울화가 서로 충돌하는 동안에는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저조차도 사도를 보면서 속상해 죽는 줄 알았다. 그런 불편한 관계에 있는 이들이 죽음을 앞두고 진솔한 마음의 대화를 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절정이 있을까. 진심을 다해 불편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사실 엄청난 용기다. 삶에서는 다들 살살 비켜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런 점에서 사도는 비겁한 인간이 아니었지만 좀 비겁한 것도 삶의 지혜다.
▶ 자식된 관객 입장에서 보면 때때로 영조는 사도에게 지나치게 엄혹하다는 느낌이다.
- 전 태생의 조건이라고 본다. 어쨌든 조선시대 왕은 참혹하다. 영조가 종묘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내를 죽이고, 형제를 죽이는 콩가루 집안이다. 어쨌든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영조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까. 영조는 혹독한 상황에서 노론에 의해 만들어진 왕이었고, 결핍과 열등의식이 있었다. 이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가혹했고 아들에게도 그랬다는 것이다. 영조와 태생 조건부터 다른 사도세자는 그런 강요가 이해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 자식인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는 여태까지 많았는데 그렇다면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어떤 사람이었나.
- 사도세자는 정조에게 굉장히 관대한 아버지였다. 사도세자가 결국 영조를 죽이지 못한 것도 아들이 영조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순간 사도세자는 '내가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도세자가 다시 뒤주에 들어갈 때 장인이 부채를 넣어주는 의미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 부채는 사도세자가 정조가 태어난 것을 기뻐하며 그린 부채다. '앞날을 생각하라'는 말에는 세손을 위해 죽으라는 뜻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사도세자는 머리로 하는 생각과 가슴으로 느끼는 마음이 분리돼 불행에 빠진 경우라고 본다.
- 사도의 어머니인 영빈의 환갑 잔치와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환갑 잔치를 보면 사도와 정조가 모두 4배를 한다. 이 두 사람은 중전이나 대비 혹은 대왕 대비가 아니기 때문에 4배를 받을 수 없는 이들이다. 이렇게 현재와 과거가 이동하는 것이다. 아버지인 사도에 대한 애통의 이야기 역시 있는데 영조와 사도 간의 감정이 워낙 강하다 보니 중간까지 가고, 뒤를 자꾸 놓치게 된다. 아무래도 영화 키워드가 송강호 대 유아인으로 흘러 가다 보니 이런 마케팅의 오류가 발생한 게 아닐까. (웃음)
▶ 사도세자와 정조의 운명에 궁궐 여인들이 깊게 개입된 것도 흥미롭다.
- 이 영화 속의 여성은 남성에 의해 대상화된 캐릭터가 아니라 굉장히 주체적이다. 영조의 사표를 수리하는 인원왕후나 영조에게 명분으로 이용 당했지만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살리겠다고 고변하는 영빈이 대표적이다. 혜경궁은 혜경궁대로 선명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아들까지 죽는 상황이 되자 남편이 아닌 아들을 살리는 것을 택한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 역사적으로 사도세자가 가진 부정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왜곡 논란이 있을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나.
- 물론 사도는 궁궐에 있는 사람들 100여 명을 죽일 정도로 미쳤었다. 뒤주에 갇혀 죽기 2년 전에 그렇게 된 거다. 스스로 말한 것처럼 울화가 터졌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미친 사람은 없다. 원인이 반드시 있다.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를 보호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피해자'라는 개념을 좀 더 폭넓게 볼 필요가 있다. 과와 오가 구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도세자는 정조를 중심으로 한 사건에 있었던 인물이다. 이 인물을 대상화해서 볼 것이냐, 혹은 주체화해서 볼 것이냐의 문제다. 우리 영화는 대상화됐던 사도세자의 존재를 주체화시켰기 때문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 아동 성폭행 사건을 다룬 전작 '소원'도 그랬지만, 항상 불편한 주제나 소재에 도전하는 이유가 있나?
-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는 다수의 가치를 공평하게 존중하는 사회다. 성공 신화만 답습해서 성공할 수 있으면 다 그렇게 하겠지. 그러나 그럴 수 없고, 성공에서 탈락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배려와 위로가 있을지 고민하는 연장선상에 '소원', '사도' 등의 작품이 있다. 두 이야기 모두 불편한 진실이다. '불편함'보다는 '진실'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런 진실을 마주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힘든 순간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감정들은 고통을 통해 카타르시스로 가는 대전제다. 정화는 고통을 통해서 가능하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비극으로 내가 정화된다면 그것이 문화적 향유라고 볼 수 있다. 상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외면하고 피하고, 각색하고 미화하면 삶의 끝에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