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가 귀한 조선시대때는 과거 시험에서 불합격해서 버려질 처지에 놓인 종이 답안지도 함부로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 폐지는 지의(紙衣), 즉 종이 옷을 만드는데 사용하도록 했는데, 주로 변방을 지키는 군인들의 겨울 군복에 솜 대신 시험 답안지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705년(숙종 31)에 실시된 과거 시험 후에는 지의를 만드는 곳으로 수송된 불합격 답안지가 예년에 비해 많이 모자랐던 모양입니다.
비변사에서는 해당 시험 감독관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건의했고, 숙종은 파면하라고 명했습니다.
⇒ 현직 현감의 부인 유감동과 간통한 남자들에 대한 추가 보고가 있었는데, 한 관리는 관아에서 간통하고 관청의 물건까지 훔쳐다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 숙종 21년 (1695) : 가을인데도 쌀값이 치솟아 한 말이 50전이나 하다
⇒ 추수철인데도 쌀값이 폭등해 한 말에 50전이 되었다가 다음 해 봄에는 200전으로 폭등 했다
■ 숙종 31년 (1705) : 과거에 불합격한 답안지 종이 수량이 적어 감시관을 파면시킴
■ 고종 20년 (1883) : 인천항의 일본 조계 조약을 체결하다
⇒ 인천항에 일본인 거주지가 설정됐다. 일본은 조계 설정을 통해 조선 영토를 잠식하고 상권을 점유했고, 조선침략 기지로 활용했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