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1. 미친 전세가격, 정부 책임 없나 2. 전세시대 막을 내리나 3. 백약이 무효인가 4. 월세시대 도래…대비는? |
한국감정원의 주택가격동향 조사결과 지난 9월 전국의 전세가격은 0.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달 전보다 0.1%포인트 더 올랐다.
올들어 지난 9월까지 누계로는 3.72%가 올랐다.
지난 2014년 1년 동안의 전세가격 상승률(3.4%)을 9달만에 넘어섰다..
지난 9월 전세가격이 특히 많이 오른 것은 수도권과 서울지역 아파트로, 수도권이 0.84%, 서울은 1.02% 올랐다.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가 전세가격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전세가격이 계속 오르는 바람에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주택에서는 65.7%로 한달 전과 같지만 아파트에서는 73.1%로 0.2% 포인트 올랐다.
지역에 따라서는 8, 90%를 넘어 매매가격에 육박하는 곳도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 전세가격 6년 4개월간 47%25 올라...최장 상승기간, 최대 상승폭
전세가격이 치솟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발표한 인플레이션보고서를 보면 전세가격은 지난 2009년 3월부터 76개월, 6년 4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올랐고 그 상승폭은 47%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상 최장의 상승기간과 최대의 상승폭이다.
전세가격은 한국은행의 인플레이션 보고서 발표 이후에도 계속 오르고 있고 서울 재건축 이주 수요 등으로 앞으로도 당분간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집없는 서민들의 고통과 설움은 클 수 밖에 없다.
폭등한 전세금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내거나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가히 전세대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이다.
◇ "집값 올라가지 않을 것이란 생각 확산...월세로 빠르게 전환"
전세가격이 계속 치솟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세시장에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주된 요인으로는 무엇보다 주택 임대차시장구조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초저금리 기조 아래서 주택매매가격이 앞으로 오를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확산돼 많은 전세물량이 월세로 돌려지고 있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전세제도는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전세가 일종의 레버리지다. 현금을 많이 내지 않고도 집을 살 수 있다. 집값이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금리가 낮다 보니까 전세가 아무런 메리트가 없게 돼 월세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시장에서는 주택을 보유해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한 몫 보겠다는 투기심리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은행 금리 이상으로 월세라도 챙기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는 것이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런 주택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 외에도 임대주택 공급에도 문제가 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오랫동안 저소득 서민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전세가격이 급등한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전강수 교수는 "공공임대주택공급을 계속 확충했어야 했는데 이명박 정부 때는 반 토막 냈고 현 정부 들어서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매매가격을 올려서 전세수요를 그쪽으로 돌려보려고 하는데 한계가 있다. 임대주택 공급이 오랫동안 제대로 안돼서 발생한 임대주택공급 부족이 존재하는 상황에다 전세가 사라지는 쪽으로의 시장구조 변화가 겹쳐서 전세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순조롭게 공급돼 왔으면 전세대란은 상당히 완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통계청의 e-나라지표를 보면, 민간까지 포함한 공공임대주택 건설실적은 지난 2007년 14만 6천 채로 정점을 찍은 이후 MB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 7만 3천 채까지 떨어졌다.
현 정부 들어서는 소폭 오름세로 돌아서 지난 2014년에는 8만 채 선에 턱걸이한 상태이다.
◇장기 공공임대주택비중 5.5%25...OECD평균의 절반에도 못미쳐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은 유럽의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이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지표가 10년 이상 장기 공공임대주택수이다.
지난 2014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장기 공공임대주택은 107만채로, 전체 주택의 5.5%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11.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네덜란드는 35%, 영국은 19.25, 프랑스는 17%에 이른다.
유럽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저소득 서민층을 위한다는 구호가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월세전환 예측 가능한 것... 정부 미리 대비했었어야"
임대주택공급과 관련해서는 정부에 대해 더 강한 비판도 제기된다.
전세가격 상승이 지난 2009년 3월부터 시작돼 가장 긴 기간에 걸쳐서 이뤄지고 있었고 임대차시장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현재와 같은 전세값 폭등과 전세난은 정부로서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태경 사무처장은 "최근 주택시장의 변화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집값이 올라갈 것 같지 않다는 컨센서스가 시장참여자들 사이에서 확산되면 전세가 당연히 월세로 전환된다는 것은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을 예견하고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물량을 늘리는 것으로 대비했었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시장에 충격을 덜 주면서 전세난에 대비할 수 있는 버퍼가 확보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안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주택매매시장이 아닌 임대차시장의 안정에 두고 공공임대주택 공급확충 등의 근본대책을 보다 일찍부터 강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전세대출이 전세값 올리는 것은 구성의 오류"
전세가격을 치솟게 한 또 다른 요인은 전세자금대출 지원이다.
국민과 신한 등 6대 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지난 8월 현재 18조 4925억원으로 2010년 말에 비해 9배 넘게 늘었다.
전세값 폭등에 따른 세입자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한도를 확대해 준 데 따른 것이지만 이것이 전세가격을 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종인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한 전세자금대출은 주택담보대출보다 더 받기 쉽다. 이것이 전세 가격을 띄우는 한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전세대출이 전세값 올리는 것은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구성의 오류다. 야구경기장에 갔을 때 잘 안보인다고 맨 앞줄에서 일어서면 결국에는 모두가 다 일어나 야구경기를 구경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체 구성원은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은 대출을 더 내서 더 비싼 전세를 구할 수 밖에 없고 정부는 대출을 늘려줬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것이었는데 결국에는 더 비싼 전세를 구입할 수 있는 유효수요를 만들어 전세가격을 올리는 셈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상영 명지대부동산학과교수는 "전세가 많이 오르니까 싼 금리로 전세금을 빌려주자고 했는데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치솟는 전세를 뒷받침해 주는 셈이 됐다. 현재는 정부도 뒤늦게 문제가 있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