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의 마지막 가을' 그의 침묵은 金이 될까

'아쉬비...' 넥센 박병호가 7일 SK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3회 1사 1루에서 상대 에이스 김광현으로부터 우익수 뜬공을 친 뒤 아쉬운 표정으로 타구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자료사진=넥센)
역대 최초 2년 연속 50홈런을 날린 괴력의 사나이. 여기에 역시 사상 최초 4년 연속 홈런-타점왕이라는 아성을 쌓은 최고의 거포. 185cm, 107kg, 근육으로 울퉁불퉁한 육중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엄청나다.

'넥센져스'를 이끄는 4번 타자 박병호(29 · 넥센)다. 하지만 그의 '가을 침묵' 또한 무겁다. 일단 올해 가을야구의 초입에서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침묵을 깨진 못했다.

박병호는 7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SK와 와일드카드(WC) 결정전에서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볼넷 2개를 골라냈으나 삼진도 2개를 당했다.

기대했던 한방은 나오지 않았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경기 전 "오늘 홈런 2방만 나오면 쉽게 이길 것 같다"면서 "1개라도 좋고, 박병호가 쳐주면 더 좋겠다"고 은근한 바람을 드러냈지만 이뤄지진 않았다.

비록 넥센이 5-4 극적인 끝내기 연장 승리를 거두긴 했다. 그러나 박병호의 침묵은 넥센이 고전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SK 거포 앤드류 브라운이 선제 홈런 포함, 2안타 1타점 1득점을 올린 것과 살짝 비교가 됐다.

1회 제구 난조를 보인 SK 김광현에 볼넷을 골라내며 만루 기회를 이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후가 아쉬웠다. 1-0으로 앞선 3회 1사 1루에서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노렸으나 중심에 맞지 못하면서 우익수 뜬공. 본인도 타격 직후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1-3으로 역전 당한 6회는 상대 켈리에게 3구 삼진을 당했고, 3-3 동점을 만든 7회도 역시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연장 10회말에는 볼넷을 골라냈으나 도루에 실패해 이날 타석을 마무리했다.

▲통산 PS 타율 2할대, 3홈런...

올해 정규리그에서 박병호는 무시무시했다. 홈런-타점왕 3연패를 일궜던 지난해보다 더 무서워졌다. 개인 한 시즌 최다이자 KBO 역대 3위인 53홈런에 역대 최다 기록인 146타점을 쓸어담았다. 여기에 타율도 개인 최고이자 올 시즌 5위인 3할4푼3리를 찍었다. 힘은 더 세졌는데 정교함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2014 한국야쿠르트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4회 삼진을 당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넥센 박병호.(자료사진=황진환 기자)
하지만 가을은 역시 쉽지 않나 보다. 지난해까지 박병호는 포스트시즌(PS)에서 15경기 타율 2할1푼4리(56타수 12안타) 3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 사사구 11개를 얻어냈으나 삼진도 16개나 됐다.


특히 지난해 삼성과 한국시리즈(KS)에서는 6경기 타율 1할4푼3리(21타수 3안타) 1홈런 1타점에 머물렀다. 창단 첫 KS 진출과 함께 우승을 노렸던 넥센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병호는 6차전 마지막 타자로 나와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나며 2승4패, 삼성의 통합 4연패를 지켜봐야 했다.

사실 박병호가 PS에서 정규리그만큼의 성적을 올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한방에 승부가 갈리는 단기전인 데다 가장 무서운 타자인 만큼 상대 투수들이 좋은 공을 줄 리가 없다. 철저한 코너 워크를 펼치는 집중 견제 속에 타격감을 찾기는 무척 힘든 일이다.

박병호도 이를 잘 안다. 하지만 뭔가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난해 KS에서 박병호는 상대 견제에 대해 "워낙 안 맞으니까 여유를 갖고 기다려야 하는데 조급해져서 승부를 쉽게 간다"면서 "상대에게 위압감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드러낸 바 있다.

▲마지막일지 모를 가을, 침묵은 과연?

하지만 박병호의 가을이 조용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첫 PS였던 2013년 두산과 준플레이오프(PO)에서 박병호는 역대급의 명장면을 그러낸 바 있다. 5차전에서 박병호는 3점 차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말 2사에서 거짓말처럼 3점포를 때려내며 3-3 동점을 만들었다.

상대 필승카드 더스틴 니퍼트로부터 뽑아낸 통렬한 중월 홈런이었다. 비록 팀은 연장 끝에 졌지만 박병호의 홈런만큼은 역대 KBO 리그 PS 역사에 남을 만한 소름끼치던 장면이었다.

'소름이 쫙~' 지난 2013년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박병호가 9회말 투아웃에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날리고 포효하는 모습.(자료사진=넥센)
지난해 LG와 PO에서도 박병호는 타율 3할3푼3리(15타수 5안타)의 성적을 냈다. 홈런과 타점은 없었으나 4경기에서 2볼넷 4득점을 기록했다. 삼진도 6개였으나 여유를 갖고 기다리면서 안타와 출루가 많았다. 당시 넥센에는 강정호(피츠버그)와 김민성 등 다른 해결사들이 있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투수들의 집중 견제는 당연지사. 좋은 공을 줄 리가 없다. 여기에 지난해 KS처럼 서두른다면 그의 침묵은 전혀 가치가 없게 된다.

다만 묵직하게 의미있게 기다린다면 그 침묵은 다른 성격을 띤다. 올해 넥센은 강정호가 없지만 최다안타왕 유한준과 돌아온 김민성 등 박병호 뒤에 무서운 타자들이 즐비하다. 꼭 자기가 해결하지 않고 연결해줘도 값지다. 지난해 본인의 말처럼 견제를 견디면서 상대 실투를 기다리는 정중동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까닭이라면 박병호의 침묵은 금이다.

4번 타자의 침묵은 그 누구의 것보다 무섭다. 언제 터질지 모르고, 또 그 폭발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과연 언제 박병호의 인내심이 어디까지 갈지, 또 마침내 헐크로 변할지 지켜볼 일이다. 내년 미국 진출을 노리는 박병호에게 어쩌면 이 가을야구는 한국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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