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박정자, 손숙 ('키 큰 세 여자' 주인공)
흔히들 연극을 배우의 예술이라고 표현하죠.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한국 연극의 살아있는 전설, 연극의 대모 두 분을 모십니다. 한 분 모시기도 어려운 분들인데, 두 분을 자그마치 동시에 연결을 합니다. 바로 배우 박정자 씨 그리고 손숙 씨. 이 두 분이 7년 만에 한 무대에 섰답니다. 지금 한창 공연이 진행 중인데 관객들 반응이 대단하다고 그러네요. 이 두 분을 만나보죠. 연극 ‘키 큰 세 여자’에서 만난 두 거장. 먼저 박정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 박정자> 안녕하세요. 그런데 우리 전설 아니에요. (웃음) 우리는 현재도 진행형이기 때문에 전설 아니에요.
◇ 김현정> (웃음) 알겠습니다. 그럼, 전설 아닌 것으로 하겠습니다. 손숙 선생님, 안녕하세요.
◆ 손숙>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손 선생님도 전설이라는 말에 동의 못하십니까?
◆ 손숙> (웃음) 못 합니다. 우리는 현역입니다.
◇ 김현정> (웃음) 이 두 분이 7년 만에 또 한 무대에서 만나셨어요. 박 선생님, 예전하고 느낌이 또 조금 다르시던가요?
◆ 박정자> 그럼요. 조금씩 철이 나는지 고맙게 느껴지죠, 감사하게.
◇ 김현정> 감사하다, 조금 부담스럽지 않으셨어요? 거장 두 분이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이.
◆ 박정자> 우리가 거장인가? 거장, 전설 이런 거 하지마세요. (웃음) 우리는 현재진행형인 연극배우예요.
◆ 손숙> 그냥 거장으로 해요, 형님. 거장 합시다. 거장으로 하시자고. (웃음)
◇ 김현정> (웃음) 제가 정리할게요. 그러면 전설은 아니고... 거장 정도로 정리하는 걸로. (웃음) 손 선생님은 어떠셨어요? 박정자 라는 거장 배우와 함께 한 무대에서 두 분이 딱 서는 것.
◆ 손숙> 그냥 형님이 제 곁에 계시는 게 너무 감사하고. 또 뵐 때마다 가슴이 괜히 짠하고. 이분이 이렇게 소중한 분이었나... 그런 생각을, 진심으로 참 많이 하게 됐어요.
◆ 박정자> 우리는 눈빛만 봐도 알아, 고맙다고. (웃음)
◆ 박정자> 나는 박정자는 A, 손숙은 B.
◇ 김현정> 이게 어떤 연극입니까? 어떤 분이 소개해 주시겠어요, 어떤 연극입니까?
◆ 손숙> A, B, C가 사실은 같은 여자예요. A는 90대의 인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여성이고. B는 전성기라는 50대의 여성이고. C는 이제 정말 꽃피는 20대의 여성.
◇ 김현정> 한마디로 여자의 일생이네요.
◆ 손숙> 그렇죠, 여자의 일생이라고 하면 맞을 거예요.
◇ 김현정> 거기에서 그러면 박정자 씨는 90대 노인 역할을 맡으셨고요?
◆ 박정자> 그냥 90이 아니라 거기다가 치매까지 와가지고. (웃음)
◇ 김현정> 반면에 손숙 씨는 조금 더 어린 역할, 50대 맡으셨어요.
◆ 손숙> 어리다니요. 딱 내 나이죠. (웃음)
◇ 김현정> (웃음) 지금 들으시는 우리 청취자분들이 이 두 분의 실제 나이, 실제 연세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들 하실 것 같아요. 공개해도 괜찮습니까?
◆ 박정자> 그럼요. 얼마든지요. 무대 위에서 92세의 나이지만. 실제 나는 1942년생이니까 일흔넷이고요.
◆ 손숙> 나는 무대에서는 쉰둘이고... 실제론 일흔 둘입니다. 그렇게 공개를 바라시나요. (웃음)
◇ 김현정> (웃음)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박정자 씨가 일흔넷, 손 숙 씨가 일흔둘, 딱 두 살 차이시네요, 두 살 차이.
◆ 손숙> 아름다운 나이죠.
◇ 김현정> 그래도 솔직히 안 힘드세요? 그 두 시간짜리 연극을...
◆ 박정자> 매일매일 긴장하고요. 지옥을 몇 번 들락날락했어요. 늘 그냥 시험 보는 학생처럼 대본하고 씨름했고. 지금도 자면서 대사 생각하고, 차 타고도 생각하고 걸으면서도 생각하고. 그리고 잠시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 김현정> 지옥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할 정도로. 그러니까 보약도 드시고 이러면서 관리하시는 거네요.
◆ 박정자> 네, 뭐 주사도 맞고 다 해요. (웃음)
◇ 김현정> 투혼입니다. 손숙 선생님, 손 선생님도 연세가 만만치 않으신데. 제가 몇 년을 아침마다 뵈왔잖아요.
◆ 손숙> 그러게 말이에요.
◇ 김현정> 저보다 더 생생하세요. 솔직하게. (웃음)
◆ 손숙> (웃음) 감사합니다.
◇ 김현정> 그 힘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 손숙> 글쎄요. 일하는 것도 늘 즐겁고 연극도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저는 연습장에 갈 때면 늘 가슴이 뛰어요, 사실.
◆ 손숙> 연습장 가는 게 아주 즐겁고 눈만 뜨면 빨리 가야지...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집에 가서 잠만 자요. 아니면 연습장에 나와 있거나 공연장에 나와 있는 게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정말 이 노릇을 이렇게 하겠어요? 돈이 생겨, 명예가 생겨. (웃음)
◇ 김현정> (웃음) 돈은 안 생깁니까?
◆ 손숙> (웃음) 돈은 안 생기죠.
◇ 김현정> 그래요. 그냥 좋아서 하니까 그냥 거기서 에너지를 얻고, 설레고, 그게 관리비결이었군요. 박정자, 손숙. 두 분과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박 선생님. 제가 어딘가에서 보니까요. 우리는 전우 같은 사이다, 이러셨더라고요.
◆ 박정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죠.
◆ 손숙> 현장이 전쟁터니까.
◇ 김현정> 두 분이 연극을 시작할 때만 해도 굉장히 많은 동료들이 함께 시작했을 텐데 다들 사라지셨어요?
◆ 손숙> 글쎄요, 살아남은 사람도 있고 사라진 사람도 있고 그렇겠죠?
◆ 박정자> 그중에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이죠. (웃음)
◇ 김현정> (웃음) 두 분 전우. 전우애라는 게 있잖아요. 그냥 친구들이 평상시에 느끼는 그 애정과는 다른.
◆ 손숙> 그래서 요즘에는 우리가 막 올라가기 직전에 어두운 무대에 서 있을 때, 제가 형님 손을 잡거나 그래요. 그리고 끝나고 나오면 정말 이렇게 손 잡아주고... '수고하셨어요. 오늘 좋으셨어요, 잘하셨어요.' 그럴때 굉장히 든든하고 너무 고맙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전에는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요.
◇ 김현정> 어떻게 보면... ‘살아남아줘서 고맙습니다, 함께한 전우여’, 이런 느낌이네요. 그 손 꽉 잡아주실 때... 박정자 선생님, 그때 기분 어떠세요?
◆ 박정자> 그저 고마운 거죠.
◆ 손숙> 든든하죠.
◇ 김현정> 든든한 전우라... 가끔은 힘들고 외롭고 정말 그만두고 싶은 이런 순간도 찾아오나요, 이런 거장들에게도?
◆ 손숙> 저는 옛날에 많이 그런 얘기를 했죠, 너무 힘드니까. 너무 자존심 상했을 땐, ‘그냥 그만할까’ 하다가도, 그럴 때마다 저를 잡아준 게 우리 박정자 형님이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손숙이 여기 있으니까 손숙이지! 연극 빼면 손숙이 어디있어!’ 호통도. (웃음)
◇ 김현정> 그렇군요. 그러면 박정자 선생님을 잡아준 건 뭔가요? 박정자 씨도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으셨을 거 아니에요.
◆ 박정자> (웃음) 나는 연극밖에 할 줄 모르니까.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연극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또 인생에서 연극을 빼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붙들고 늘어져야지. (웃음)
◇ 김현정> (웃음) 붙들고 늘어지시는 거군요. 살아남기 위해서 전쟁터에서.
◆ 박정자> 그럼, 그럼요.
◆ 손숙> 속으로는 부상 많아요. 겉으로 안 보일 뿐이지. (웃음)
◇ 김현정> 두 분 매일 만나서 손잡고 이야기 나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하지 못했던 말씀들. 하지만 내가 꼭 한 번은 해 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으면 오늘 방송에서, 이 자리에서 해주세요.
◆ 손숙> 앞으로 제가 영원한 동생으로...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거 많이 느꼈어요. 사랑해요.
◆ 박정자> 고맙습니다. 우리가 몸도 마음도 건강해서 항상 서로 옆에 있으면서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나는 가장 바랍니다.
◇ 김현정> 두 분, 정말 건강하시고요. 이 우정 변치 마시고요. 20년, 30년 무대에서 두 분이 손 꼭 잡고 연기하는 모습을 제가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박정자> 감사합니다.
◆ 손숙> 감사합니다.
◇ 김현정> 오늘도 공연 잘하시고요. 고맙습니다. 10월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한 무대에 서는 연극계의 거장 두 분, 박정자, 손숙. 손숙, 박정자 두 분을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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