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긴 해도 노벨상 수상이 인간으로 태어나 받을 수 있는 세계 최고 권위와 영예의 상이라는 초등(국민)학교 선생님의 말이 뇌리에 박혀 폐부 깊숙이 각인됐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한국인 국적을 가졌거나 한국에서 태어나 이민을 간 1.5세 또는 2세 ,3세들의 노벨상 수상 뉴스가 전 세계인에게 울려퍼질 법도 한데 여전히 한국인 수상이라는 발표는 없다.
반면에 일본인들의 이름은 종종 나온다. 올해는 유난히도 일본인의 이름이 눈에 띄게 많다.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이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일본인이 선정됐다. 오무라 사토시(생리의학상)와 가지타 다카이키(물리학상) 학자다. 일본의 방송과 신문들은 잇따른 경사를 대서특필하며 자랑스런 일본을 강조했다.
일본은 벌써 24명(이민자 포함)이나 노벨상을 수상했다. 일본은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이라는 소설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 잊을 수 없는 <설국>의 첫 문장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로 시작된다.
중국에서도 처음으로 과학 분야 노벨상(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한·중·일 3국 중에서 우리만 아직 노벨 문학, 물리, 화학, 경제,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이 없다.
인터넷 상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우리는 뭐하나’, ‘일본 무시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자조에 이어 ‘한국이 일본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축구뿐인가’라는 탄식까지 등장한다. 왜일까?
지난 70년대부터 이·공대를 우대하고 ‘과학입국만이 살길’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는데도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현재까지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은 한명도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정치적 함의가 깃들어 있는 평화상과 다른 문학상이나 물리·화학·생리의학상 등의 수상자는 언제쯤 나올까?
뭐가 잘못돼 세계인들 가운데 두뇌 좋기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 할 한국인의 수상자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한국의 교육 문제를 주저없이 꼽는다. 주입식, 암기식, 틀리지 않기만을 위한 현 교육제도로서는, 특히 출세지향적인 교육으로서는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 생리의학상 수상이 요원하다는 짜증나는 전망을 하기도 한다.
사실 한국의 지금 교육은 천재지향적 교육이 아니라 영재를 둔재로, 또는 아주 평범한 아이들로 격하시켜버리는 수준 낮은 교육이라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육에서 과학통합 과목이 아닌 물리와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단일 과목으로 분리해 70~80년대처럼 가르쳐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래서 우리의 귀를 쫑긋하게 한다. 최소한 중력과 힘의 원리라든지, 화학의 주기율표라든지, 삼투압 현상과 자전과 공전의 원리에 의해 나타는 자연 현상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모든 학문의 기본인 수학을 어렵게 공부해야 한다는 제언은 소수 의견으로 전락했다. ‘수포자’ 방지만을 위해 수학을 쉽게 가르치고 수학 시험을 쉽게 출제하겠다는 것은 정치인들의 사고와 행동인 포퓰리즘의 일종으로 기초과학의 토대를 망가뜨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일본의 유명 대학 본고사 수학 문제를 한 번 살펴보라. 얼마나 어려운지 입이 딱 벌어질 것이다. 일본 학생들은 그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느라 머리를 싸맨다.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자주 내고, 세계 으뜸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나라임을 수학 공부와 시험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 학생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아이들이 의대와 치대를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의대에 들어가서도 기초 의학과 질병 연구에 평생을 바치겠다는 의대생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개업이나 대학병원에 남으려고만 한다. 학부모들의 의식이, 세상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개선은 요원하다.
이와 함께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 교육을 곁들여야 한다는 것은 기성의 입시 교육에 대한 반격이다. 이지성 작가는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에서 “대한민국의 현 교육제도를 혁파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미래도, 세계 1등 국가 달성도 어렵고, 노벨상 수상자는 물론이고 스티브잡스나 에디슨처럼 인간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위대한 인물이 탄생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삼성전자 입사가 꿈인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과학·기술계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10여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의 보조금도, 연구기관들과 대학들의 연구 지원도 상당히 개선됐다.
그렇지만 기술·과학계에서는 이 정도 수준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특히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비전이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는 기업체들의 장기 전략과 비전 부족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혁신적 기술 개발과 신기술 창조를 위해서는 수년은 기본이고 수십년 동안 장기적인 지원과 끝을 보겠다는 의지가 필요충분조건임에도 우리 기업들은 감이 익기도 전에 따먹는데만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기업들이 세운 번듯한 기초 과학·기술 연구소가 몇 곳이나 되며 어떤 성과를 냈는지 헤아려보라.
국가와 민족의 ‘내일’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노벨과학상 분석 및 접근전략 연구’라는 노벨상 수상 전략 보고서(2008년)를 내놓을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 입국을 위해서는 뭘 어떻게 계획하고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중·장기적 전략과 비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를 필두로 교육 당국과 기업, 국민 모두가 일심동체까지는 아닐지라도 한국인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의기투합할 때 ‘우리의 노벨상 꿈’은 먼 미래가 아닌 내일, 모레, 아니 수년 안으로 앞당겨질 것이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음을 자랑스럽게 여길 10월은 반드시 온다.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