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누구나 처음엔 막막합니다. 솔직히 쪽팔리죠. 무작정 사무실에 들어가 인사를 건네고 명함을 돌리는 일이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얼굴에 철판을 까는 훈련을 하다 보면 사람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일이 점차 수월해집니다."
영업맨들의 얼굴에는 두꺼운 철판이 깔려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얼굴을 붉히지 않고 웃을 줄 아는 능력은 영업의 기본 조건이다. 어디 영업맨들만 그러하랴. ''을(乙)''이라면 누구나 얼굴에 철판 하나쯤은 깔아야 한다.
우리 을들은 갑의 질타와 무시 앞에서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흔들림은 곧 ''약하다''는 이미지와 연결되고 약해빠진 을을 신임하거나 좋게 볼 갑은 없기 때문이다.
이죽거리는 거래처의 나이 어린 직원을 치받고 싶은 마음을 감추기 위해, 당장에라도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을은 두꺼운 철판으로 얼굴을 덮어야 한다. 철판은 쪽팔림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사실 을이 갑을 만나는 과정은 쪽팔림의 연속이다. 거래처에 안부전화를 거는 일만 해도 그렇다. 사업가 오모씨의 이야기. "보통 전화로 인사를 건네고 나면, 상대방으로부터 ''아, 무슨 일이신데요?''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이때가 가장 큰 고비입니다. 그저 안부를 묻는 전화이니 용건이 있을 리 없죠.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땀만 뻘뻘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쪽팔림을 넘어 굴욕을 느끼는 일도 허다하다. 그래도 어쩌랴. 그 모든 감정을 떨쳐내야 비즈니스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을.
위대한 그룹 비틀즈도 첫 음반을 내기 위해 ''갑''인 레코드회사를 찾아다닐 당시에는 수도 없는 모욕과 쪽팔림을 당했고 헤어디자이너 박준씨는 초창기에 손님들로부터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냐?"는 핀잔을 듣곤 했다. 그들의 성공은 쪽팔림을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단련된 심신의 결과였던 것이다.
쪽팔림도, 굴욕도, 모욕도, 수치심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다. 오늘 치욕을 겪을지라도, 웃으면서 회상할 내일을 위해 을들은 오늘도 울분을 참고 달린다.
제공 ㅣ 을의 생존법(쌤앤파커스)
※글쓴이 임정섭은 세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등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활동했다. 인터넷 신문사 (주)파이미디어의 대표이자 칼럼니스트며, 재테크와 자기계발을 위한 석세스 프로그램 사이트 ''아이엠리치''의 주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