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간에 축구와 관련된 모든 행위가 금지된다. 정 명예회장은 "주말마다 나가는 조기 축구도 하지 말라는 거냐"며 애써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상 이 징계는 축구계 퇴출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정 명예회장은 무엇 때문에 축구계에서 퇴출당할 위기까지 놓이게 된 것일까.
FIFA 윤리위원회 심판관실은 지난해 11월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정에 불거진 비리의혹을 조사한 보고서를 내놨다. 이 가운데 2010년 후반기 정 명예회장이 FIFA 집행위원에 '글로벌 풋볼 펀드(GFF)'를 조성하겠다는 편지가 포함됐다.
정 명예회장이 FIFA 집행위원에 보낸 편지는 2011년부터 2022년까지 7억7700만 달러(당시 약 8518억원) 기금을 조성해 FIFA와 회원국 협회가 축구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선수, 지도자, 행정가를 양성하도록 돕겠다는 내용이다.
윤리위원회는 한국의 2022년 월드컵 유치와 정 명예회장의 기금 조성이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해석했다. 한국이 '글로벌 풋볼 펀드'의 조성을 유치 공약집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FIFA 집행위원을 대상으로 한 공식 프레젠테이션에서 강조했다고 지적하며 "이는 투표에 영향을 미치고 집행위원에 이권을 제공하거나 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윤리위는 제재를 위해 이 사안을 따로 떼어 심의하는 절차는 밟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잠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실과 환경이 포착됐지만 FIFA 월드컵과 개최지 선정 과정의 정직성을 위태롭게 할 만큼의 사태는 아니라고 본다"고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정 명예회장도 "집행위원이 자국의 유치활동을 돕는 것은 FIFA가 오랜 전통이자 자연스러운 애국행위다. 이런 활동은 금하는 FIFA 규정도 없다"면서 "나뿐 아니라 스페인, 잉글랜드, 벨기에, 카타르, 일본, 러시아 등의 집행위원도 모두 월드컵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설명했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FIFA는 자신의 결정을 뒤집었다. 현재 FIFA 윤리위원회가 당시 정 명예회장의 선거운동 참여를 다시 문제시하며 내부적으로 15년의 자격정지를 확정했다.
여기에 지난 6월 제프 블래터 회장과 측근의 부패와 비리 혐의가 적발되자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17년간의 FIFA 부회장 겸 집행위원 활동을 하는 동안 겪은 FIFA의 내부 문제를 공개하고 윤리위원회의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점도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4년의 추가 자격정지가 내려졌다.
현재 FIFA는 이와 관련해 정 명예회장의 청문회 출석을 요청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응하지 않고 있다. 청문회 참석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정 명예회장은 "FIFA 윤리위 명예훼손 건에 대해 윤리위 스스로 심사하는 것은 사건 당사자가 재판장이 되겠다는 것이니 말이 안 된다"면서 "제프 블라터 FIFA회장과 제롬 발케 전 FIFA사무총장이 참석해야 나도 청문회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FIFA가 징계를 확정할 경우 사실상 정 명예회장의 차기 FIFA 회장 선거 출마는 무산된다. 오는 26일로 마감하는 후보 등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후보등록을 위해 5개국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 명예회장은 "국제사회의 양식이 살아있다고 믿는다. 최선을 다해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후보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