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에 사람들이 놀라 흩어진 자리에는 한 인물이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을 겨누려는 듯 여전히 총신을 내리지 않고 있던 그는 대한군 참모중장 안중근(1879~1910)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보낸 11일간의 행적을 정직하게 뒤따른 책 '안중근, 하얼빈의 11일'(지은이 원재훈·펴낸곳 사계절)은 이 역사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자신의 뜻을 이룬 것을 직감한 안중근은 그 자리에서 대한국 만세라는 뜻의 러시아어 코레아 우레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순간적으로 주위의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안중근은 찰나의 순간에 절대 고요의 세계에 들었다. 안중근에게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러시아 병사들이 와서 자신을 체포할 때에도 별 느낌이 없었다. 쓰러진 이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총성에 놀란 사람들이 웅성대며 안중근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143쪽)
우리는 안중근의 이름을 어릴 적부터 뇌리에 박히도록 들어 왔다. 하지만 정작 그가 왜, 어떠한 각오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는 그를 민족주의자라는 테두리에만 머물도록 알게 모르게 강요했던 한국 사회의 인식 틀도 큰 몫을 했으리라.
◇ 당연히 여겨 놓친, '안중근은 왜 이토를 저격했는가'라는 물음의 깊이
'일본인들이 보기에 안중근은 암살범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전체의 시각으로 보면 암살범이 아니다. 여기에 안중근의 고민과 고통이 있었다. 그는 쉽게 총을 든 것이 아니다. 명예욕이나 부귀욕, 혹은 개인적인 원한, 실리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나라를 위해 총을 들었다. 대한국인 안중근, 그는 다른 이름을 원치 않았다. 제국주의 시대의 심장이 안중근의 총알을 원했다. 이토라는 동양 평화의 주적을 제거하는 것이 그가 원했던 동양 평화의 한 방식이었다. 그는 성찰하고, 판단하고, 행동했다.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탄환처럼, 안중근은 짧은 생애를 불꽃을 태우듯 살았다.' (12쪽)
혹자는 '꼭 그렇게 무력으로 일제에 대항해야만 했나'라는 의문을 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대한 대답이 될 법한, 책 속 지은이의 생각을 소개한다.
'그는 총을 들었지만, 그 총이 겨눈 것은 폭력이었다. 의병 지도자 시절 사로잡은 적군에게 훈계하고 총까지 돌려주는 평화주의자 안중근은, 결국 폭력을 통하여 평화를 꿈꿀 수밖에 없었기에 그 누구보다 괴로웠다. 그는 단지 일본의 거물 정치인이 아니라 짐승과 같은 시대를 향해 총성을 울렸고, 그 총성은 종소리처럼 울려퍼져 동아시아 전체가 제국주의와 투쟁하게 되었다. 비록 그 자리에 쓰러진 것이 일본 제국주의가 아니라 이토라는 늙고 작은 인간일 따름이라 해도, 그 노인이 쓰러진 자리에서부터 우리의 항일 저항기는 시작되었다. 안중근이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14쪽)
또 다른 답변이 될 만한 부분이 있어 덧붙인다.
'우린 가끔 벽 앞에 선 것 같은 절망감에 시달린다. 안중근의 고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의거가 이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한 무력의 사용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가 간의 전쟁도 그러하다. 국가 간의 전쟁은 도저히 대화나 평화로운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쓰는 최후의 방법이다. 하지만 일제는 자국의 국력 확장을 위해 가난하고 힘없는 한국을 억압하고 유린했다. 그것은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무력에 무력으로 대항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시의 상황은 안중근의 정신을 탄생시켰다.' (276쪽)
◇ 꿈틀대는 일본 제국주의 망령…"안중근의 고뇌와 고독 되새길 때"
'안중근은 1909년 10월 21일 오전 8시 50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하얼빈으로 가는 우편열차를 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까지의 총 주행거리는 778킬로미터였다. 안중근에게 그 778킬로미터는 일생의 마지막 여행길이었다. 하얼빈을 향해 가는 기차는 조선 침략의 주적인 이토의 심장을 향해 날아가는 총알이었다. 안중근의 몸은 금속성으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60, 61쪽)
지금 우리는 안중근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그가 행한 의거의 역사적인 의의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는 실정 또한 안타깝다. 더욱이 최근 아베 정권은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만든 안보법안을 강행 통과시키며, 움츠리고 있던 제국주의 망령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여러 정체성이 공존했던 안중근의 생애를 살펴보고, 이토 저격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든 당대 동아시아의 급박한 정세를 함께 다룬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안중근은 자신을 버리고, 민족과 동양 평화 이 두 가지 대의명분을 내걸고, 대한군 참모중장이라는 자격으로 하얼빈이라는 전쟁터에서 적의 우두머리 이토를 사살한 것이다. 미우라는 일본 낭인들을 이끌고 한 나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궁궐을 군홧발로 짓밟고 저격이나 사살이 아닌, 군도로 왕비를 처참하게 살육하고 그 시신마저도 불을 질러 버렸다. 그런 인간들은 일본의 보호를 받아 훈방 조치되고, 안중근은 정당한 행위임에도 일본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았다.' (292쪽)
◇ "자신이 꿈꾼 세상과 눈앞에 펼쳐진 실낱같은 끈을 본 안중근"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는다./ 우리들 2000만 형제 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에 신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한다면 죽는자로서 유한이 없을 것이다.'
지은이는 "그(안중근)가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조국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두려움마저도 형장에서 사라져 버렸다"며 "이제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남아 있었다. 안중근은 이제 살아남은 자들의 몸과 영혼에 깃들어 조국의 어두운 현실을 헤치고 나아가야 했다"고 전한다.
'선고일 이후 안중근이 보여 주는 문장들은 고독의 문장이다. 나는 이 고독에서 살 힘을 찾는다. 당대의 그 어떤 인물보다 고독하게 자신의 시대를 살다 간 안중근은 사형선고를 받고 깊은 사색의 정점에서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다. 자신의 죄를 인식한 것이다. 그 죄는 시대라거나 이토를 저격한 것이 아니라 어질고 착한 한국민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각성이다. 이러한 각성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안중근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294쪽)
지은이는 특히 "안중근은 자신이 꿈꾸었던 세상과 눈앞에 펼쳐진 실낱같은 끈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고 강조한다.
'책을 쓰기 위해 안중근에 대한 자료를 읽고, 하얼빈과 뤼순을 다녀왔다. 안중근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도 들어 보았다. 그런데 나는 자꾸 조선이라는 거대한 태양이 지는 광경을 배경으로 안중근이 서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 이미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한 쓸쓸한 남자의 초상이다. 그를 말할 때 우리는 민족주의자, 천주교 신자, 독립투사 등등의 면류관을 씌워 준다. 우리는 한 영웅적 인간에게 그의 본모습보다는 자기 생각에 맞는 부분만을 확대하여 어울리지도 않는 동상을 만들어 세운다. 그 동상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안중근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조국과 세계의 평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그는 역설적으로 폭력의 상징인 총구를 통하여 그것을 말하려고 했다. 어설픈 동상이나 정치적인 외침보다는 안중근의 한마디를 되새기는 정신이 필요하다.' (3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