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는 다른 전통시장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상점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미군들이 평택에 와서 꼭 들르는 곳은 담요 가게와 맞춤양복점이다. 미국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면서 질도 더 좋기 때문에 한국을 찾아온 미군들이 꼭 한 번씩 들렀다 가는 곳이다.
원화보다 달러가 더 익숙하다는 이곳, 평택 국제중앙시장 상인들에 대한 72시간의 기록이 4일 밤 10시 55분 방송되는 KBS 2TV '다큐 3일'을 통해 공개된다.
1960, 70년대 최고의 호황기를 누렸던 평택 국제중앙시장.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들을 위한 무료 전세기가 운행됐기에 일본과 필리핀 등에 주둔하던 미군들까지 전세기를 타고 중앙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물건, 그리고 맛있는 음식들이 미군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무료 전세기 운행이 중단되고, 국내에 주둔하는 미군 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평택 국제중앙시장은 쇠락을 길을 걸었다. 더욱이 올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첫 확진 환자가 평택에서 나오면서 더욱 큰 위기에 직면했다.
"어린 시절에는 이 골목 전체가, 이 아래 골목 메인 길 전체가 재래시장으로 나와서 막 좌판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셨어요. 어르신들이 나와서 반찬도 팔고…. 그러니까 거리 자체가 되게 정겨웠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사라지더라고요." - 최혜원(40) 씨
◇ 토박이와 이방인이 함께 사는 곳…"잘 됐던 그 시절로 다시"
미군들의 입맛에 맞게 햄버거를 만들었고 노점에서 판매하는 튀김에는 간장 대신 소금을 뿌려줬다. 미제 소시지와 치즈를 넣은 부대찌개도 이곳 평택 국제중앙시장에서 시작됐다.
미군들을 위해 생긴 상점들 중 하나는 맞춤 옷가게였다. 몸집이 커서 기성복을 입지 못하는 미군을 위한 맞춤양복점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스포츠 팀의 유니폼에 이름을 새겨 제작해 주는 스포츠 숍도 생겼다. 이들은 미군들을 위해 평택 속 작은 미국을 만들었던 셈이다.
평택 국제중앙시장에서 25년째 스포츠 숍을 운영하는 김유달 씨. 이곳에서 자식들을 키워내고 자신도 많은 것을 배웠다는 김 씨는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외국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아프고 힘들어도 손에서 일을 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제가 해준 옷도 누군가는 기억을 해줄 거라는 거죠. 그게 우리 나라사람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거예요. 그때가 정말 기분도 좋고… 어떨 땐 자기가 사진을 찍어 보내줘요. '이거 네가 만든 옷이야'하면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거든요. 그런 것들이 기분 좋죠."
올해 평택 국제중앙시장에는 새 바람이 불었다. 얼마 전, 새로 취임한 송두학 상인회장의 나이는 34세. 시장에서 햄버거 가게를 운영 중인 송 씨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시장의 흥망성쇠를 직접 보고 겪어 왔다. 이제는 시장의 옛 영광을 되돌리고 싶다는 송 씨다.
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상인회에서 야심차게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 하나가 '헬로 나이트 마켓'이다. 평택 국제중앙시장 뒤편에 위치한 기찻길에서 포장마차를 세워두고 장사를 하는 야시장이다.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대부분 20~40대로 젊다. 각종 먹거리와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을 판매하는 야시장은 점점 알려져 유명해지고 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젊은 상인들은 입을 모아 "시장의 발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송두학 상인회장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다시 평택 국제중앙시장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생적인 시장의 발전을 꿈꾸는 젊은 상인들이 있는 까닭이다.
"옛날에 여기가 되게 활성화가 돼서 장사가 잘 됐던 동네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장사가) 안 돼'라고 생각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안 됐을 때 장사를 했던 사람이거든요. 그러다보니까 그 어른들한테 그 옛날에 잘됐던 그 시절로 바꿔드리고도 싶고, 그렇게 만들고 싶어요. 이 지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