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확인된 유로 6 차량의 배출가스 조작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유로 5 차량의 배출가스 저감장치도 조작이 이뤄졌고, 해당 차량이 국내에 판매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유형의 조작이 추가 확인될 경우 리콜과 별개로 법 위반에 따른 제재·처벌이 당초 예상보다 가중될 수 있고, 법원 소송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4일 환경부와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유로 5 기준에 따라 2009년 이후 판매된 폭스바겐 티구안과 골프의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제까지 확인된 결함은 유로 6 기준에 따른 차종이 배출가스의 양을 조작하는 소프트웨어를 달아 규정상 금지된 '임의 설정'(defeat device)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 판매 차량은 질소산화물 배출가스 저감을 위해 LNT(질소산화물 저장·제거장치)와 SCR(선택적 촉매 환원장치)을 장착했다. 국내 판매 차량에는 LNT가 적용됐다.
미국이 조사에 나서자 폭스바겐은 지난달 3일 미 환경청에 조작을 시인하고, 소비자를 위해 결함시정(리콜)을 약속했다. 유로 5·6 차량에 모두 해당한다.
문제는 현재 알려진 결함은 폭스바겐 측이 조사기관에 하는 '자수'나 피해자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자복'의 개념에 가깝다는 것이다.
즉, 각국 정부의 조사에서 구체적인 조작 메커니즘이 규명되지는 않았다.
폭스바겐은 미 정부가 의혹을 제기하자 유로 6 차량에 임의 설정을 했다고 시인·통보했다. 유로 5의 경우 "동일 프로그램을 적용했다"고 발표했을 뿐이다.
회사 측은 지난달 30일 환경부에도 유로 5·6의 조작 여부와 관련해선 "현재 독일 정부에서 조사 중이고, 본사는 기술적인 해결을 위한 개선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며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가 주목하는 EGR은 연소된 배출가스를 엔진 연소실로 재유입해 질소산화물을 발생시키는 산소 농도를 낮추는 장치다.
정부 자문 전문가 그룹도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환경부는 이들의 의견과 회사측 발표 등을 감안해 12월에 할 계획이던 유로 5 조사를 앞당겼다.
박심수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유로 5의 경우 EGR에 문제가 있을 개연성이 크다"며 "EGR 밸브를 조작해 시험 결과를 왜곡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에 폴크스바겐 차의 EGR 조작이 의심돼 국내에서 조사한 적이 있다"며 "당시 자료를 요청했지만 받지 못해 조사가 진척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폴크스바겐이 2009년 이후 판매 차량의 리콜 계획을 밝힌 건 EGR에 문제가 있다고 자인한 셈"이라며 "EGR 장비는 엔진과 같이 붙어 있기 때문에 제어장치 조작이 유로 6의 LNT나 SCR보다 쉽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독일 정부의 조사 상황 등을 감안해 '신중 모드'를 보이면서도 철저히 조사한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로 5에는 LNT와 SCR이 달려있지 않고 이를 조작하는 소프트웨어도 없다"며 "하지만, 자체적인 조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기계연구원의 정용일 박사는 "EGR을 조작할 경우 연료 공급이 줄어들고 연비도 좋아지는 특성이 있다"며 "조작 가능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2012년 국산 디젤차 2차종에서 인증시험 때와 실제 도로주행 때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달라지는 사실이 확인된 사례가 있다.
당시 '시속 100㎞ 이상의 고부하 구간에서 출력과 가속 응답성 향상을 위해 EGR 작동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고, 업체가 자발적 리콜을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