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전국에 소슬한 가을비가 내려 기온이 뚝 떨어졌다. 추석만 하더라도 한낮에는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여름 날씨였지만 이날 비를 기점으로 10도 중반으로 내려갔다. 갑자기 가을이 깊숙하게 심신에 들어온 모양새였다.
"그래서 점퍼를 걸쳤다"는 취재진의 대답에 김 감독은 "숙소 호텔을 나왔는데 많이 추워졌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어 "예전 같으면 가을야구를 했을 시기"라고도 했다. 김 감독에게 가을야구는 익숙하다. SK 사령탑을 맡던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시리즈에 나섰고 3번을 우승했다.
이날 목동구장은 경기 시작 뒤에도 빗방울이 간간이 흩날렸고, 바람까지 꽤 강하게 불어 체감 온도는 그야말로 10도 안팎이었다. 적잖은 선수들이 "춥다"면서 팔짱을 끼는 등 몸을 움츠렸다.
이런 가운데 한화는 이날 경기에서 더욱 가을 추위를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승부처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플레이가 나오면서 허무하게 경기를 내준 것. 가을야구 막차 티켓이 걸린 5위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안은 한화의 남은 3경기는 모두 이겨야 하는 살얼음 승부의 연속이었다.
1회부터 등골이 오싹한 장면이 나왔다. 1회말 수비 무사 1, 3루에서 한화 선발 미치 탈보트는 상대 이택근에게 유격수 땅볼을 유도했다. 타구가 느려 병살까지는 쉽지 않아도 1루 주자는 잡을 만했다. 그러나 2루수 정근우가 하주석의 송구를 제대로 포구하지 못해 주자가 살았다.
이 실책은 이후 추가 3실점으로 이어졌다. 흔들린 탈보트가 1사 후 볼넷을 내줘 맞은 만루에서 박헌도에게 2타점 2루타, 이어진 2사 2, 3루에서 장시윤에게 1타점 적시타를 허용했다. 만약 실책이 없었다면 2실점으로 막아냈을 1회였다. 이후 정근우는 타석에서 4안타 1타점의 맹타로 만회하긴 했지만 넥센의 1회 4득점, 기선 제압이 이뤄진 뒤였다.
6회 한화 타선은 무실점 호투하던 상대 에이스 앤디 밴 헤켄 공략에 성공했다. 1사에서 조인성의 1타점 2루타 등 연속 3안타로 밴 헤켄을 끌어내렸다. 여기에 2, 3루 득점권이 이어져 턱밑 추격이 기대됐다.
하지만 과욕이 화를 불렀다. 바뀐 투수 조상우의 예상치 못한 초구 높은 공을 넥센 포수 박동원이 놓치는 폭투 상황이 벌어졌다. 다만 공이 많이 흘러나가지 않아 뛰기는 무리였다. 그러나 3루 주자 정현석은 타석에 있던 하주석의 스톱 사인에도 홈으로 내달렸고, 박동원의 빠른 송구와 조상우의 베이스 커버에 아웃됐다. 한화는 하주석도 삼진을 당하며 추격 기회를 날렸다.
9회가 더 아쉬웠다. 한화는 1사 후 잇따라 대타 작전이 성공하고 정근우의 적시타까지 터져 2-4까지 추격했다. 이용규가 1루 땅볼로 아웃됐으나 2사 2, 3루 동점 기회가 이어졌다. 여기에 최진행의 유격수 내야 안타가 나오며 3-4, 1점 차까지 따라붙었다. 손승락을 무너뜨리며 동점, 혹은 역전으로 갈 호기였다.
하지만 또 다시 섬뜩한 주루가 나왔다. 최진행의 안타 때 2루 주자 정근우가 3루를 넘어 무리하게 홈까지 내달린 것. 타구가 외야로 빠질 것으로 예측한 김광수 3루 주루코치가 달리라는 사인을 냈고, 이에 정근우는 바람이 흩날리게 뛰었다.
김 코치는 이후 타구가 잡힌 것을 보고 황급히 멈춤 사인을 냈지만 이미 협살에 걸린 뒤였다. 횡사한 정근우는 김 코치를 보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고,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이날 패배로 한화는 KIA에 0.5경기 차로 밀려 7위로 내려앉았다. 비가 그친 뒤 습기가 옅어져 가을 건조로 가듯 포스트시즌 희망도 더 희박해졌다.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기고 2경기 차로 앞서 있는 SK가 잔여 2경기를 전패해야 앞설 수 있다. 그게 끝이 아니다. 5경기를 남긴 KIA의 상황도 지켜봐야 한다.
올 시즌 불꽃 투지와 열성적 응원을 업고 뜨거운 행보를 달려온 한화. 그러나 비와 함께 찾아온 갑작스럽게 떨어진 기온 속에 한화의 가을은 더 추워졌다. 특히 4년 만에 1군 무대에 복귀한 야신의 가을야구는 낯설게만 다가오고 있다.